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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치는 두 할아버지들: 미 대선 토론

by 헨리맘 2020. 10. 2.

엊그제 TV로 미 대선 1차 토론(The first presidential debate)을 시청했다. 정말 끝까지 참고 보기 힘든 수준이었는데 두 대통령 후보자는 영락없는 다섯살배기들이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소리쳤고, 물론 트럼프는 바이든보다 더 심했는데 이건 무슨 때쟁이인가 싶었다. 중간 쯤까지 보다 만 신랑, 아들과 함께 보기 시작할 땐 기가 막혀 빵 터져 함께 웃긴 했다. 혼자 끝까지 지켜본 후 소감은 두 할아버지들의 토론은 세상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창피한" 광경, 그 자체였다 하겠다.

 

 

 

미 대선 1차 토론 (사진 출처: cnn.com)

 

 

 

트럼프 대통령은 심지어 조 바이든이 말 중간에 사용한 "Smart(머리가 좋은)"를 트집 잡으며 바이든에게 머리 나쁜 사람이 그 단어를 쓰면 안 된다며 학력 논란까지 들먹였고, 모더레이터가 아무리 중재하려 해도 수도 없이 토론 중간에 끼어들었다. 바이든은 트럼프의 엄청난 자기중심적 수다에는 약간 밀리는 느낌이었지만 "Shut up, man! (닥쳐, 이 사람아!)"하며 대통령에게 대꾸했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를 여러번, 트럼프를 "Clown(광대)", "Racist(인종차별주의자)"라 부르기도 했다.

 

당연히 이 TV토론에서는 다루겠다던 여러 안건에 대한 두 후보자의 정책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었다. 예컨대, 경제 회복에 대해서는 트럼프가 내세우는 V-shpae vs. 바이든의 K-shape 에 대해 질문하니 두 후보 모두 명확한 설명을 하지 않은 채 다음 이슈로 넘어갔다. 나만 그럴까 아니면 다른 시청자들도 궁금하지 않았을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시작부터 끝까지 본 최초의 정치 토론이었는데, 정말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부끄러움이 몰려오는 시간이었을 뿐이다. 앞으로 두 번의 토론이 더 있다고 하지만, 과연 누가 보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가지 다른 경제회복 모델에 대해 찾아보니, V-shaped recovery란 팬데믹으로 급격히 나빠진 경제가 빠르게 완전한 원상태로 회복되는 걸 말하며 반면, K-shaped recovery는 빠른 회복을 보이는 경제 부문과 그렇지 못하는 분야가 함께 공존하며 경제가 회복되는 시나리오이다. (USAtoday.com 참고) 집콕 생활 관련 아마존, 홈트레이닝, 운동복 관련 브랜드의 선전과 아울러 주변에서 팬데믹으로 문을 닫았던 베트남음식점, 바이크샵 등을 떠올려보니, V-shape보다는 K-shape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긴 했다. 

 

예전 살던 주나 지금 사는 텍사스도 공화당(Republicans) 텃밭인 주이다. 물론 텍사스는 최근 보라색 주(점차 민주당(Democrats) 지지자가 늘어나면서 파란 민주당과 빨간 공화당이 섞인 주 특성을 보임)로 바뀌고 있다고 하는데, 이전 살던 오클라호마에서는 지난 대선 때 차 스티커뿐 아니라 집집 마다 트럼프 싸인이 가득이었다. 그리고 그런 빨간 주들에 힘입어 그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대통령이 되었다.

 

실제로 난 오클라호마에 살 때 트럼프 광팬 지지자 백인 할머니와도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 할머니는 그를 개인적으로 아는 친구가 있다며(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자기는 트럼프가 말하는 것만 믿지 다른 뉴스는 거짓이라 다 믿지 않는다 했다. 난 조심스레 이리저리 돌려가며 반박해보려했지만 그녀의 무조건적인 지지에 나중엔 말을 삼갔다. 아울러 미국인 친구들에게도 기회가 있을 때면 트럼프에 대해 물어봤다. 다들 대답이 똑같았는데, 힐러리 클린턴이 별로이기 때문에("I'm not a big fan of Clinton") 트럼프가 이상하긴 해도 지지한다는 식이었다. 한편 이번 대선에서는 과연 그들의 생각이 변함없을지 궁금하다.

 

난 정치에 관심도 원래 없고, 정치학 러버도 아니다. 예전에 대학 때 "정치사회학" 교수님이 꽤 유명한 분이셨다. 정치학과 교수님 강의였지만 사회학이 들어가기에 한번 들어볼까 하는 마음에 그 수업에 들어갔다. 당시 엄청난 달변을 과시하며 말 잘하던 정외과 전공자들의 논쟁과 토론을 보고는 친구들과 겁 먹고 바로 나와 버렸다. 게다가 그들은 말할 때 전략적이며 날카로운 주장이 있어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이후에도 교양 과목 수업 때 교수님 질문에 대해 적극적으로 자기 논리를 잘 펴던 이들은 정외과 전공자들이었다.

 

비슷하게 이전에 분명 미국에서 봤던 여러 TV토론을 상기해보면 정책과 캠페인에 대해 후보자들이 논쟁을 벌였다. 미국 정치인들은 법조계 출신들이 많아 그런지 늘 엄청나게 말을 잘했고 세련된 어휘를 구사했으며, 가끔 시간 초과로 말이 안 끝나 마이크를 끄는 일은 있더라도 대부분 상대방 의견을 경청한 후 상대방을 반박하는 논리를 펼쳤던 걸로 기억이 난다. 대선 토론 때는 시간 초과로 마이크를 끄지 않나보다. 2분 초과 시 바로 껐더라면 차라리 더 나았을까.

 

화요일 밤 TV를 채우던 두 할아버지들의 토론에서 그런 달변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부끄럽던 방송에 그들이 차기 미국을 이끌어갈 대통령 후보라는 게 좀 서글펐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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