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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ies of life - Books & Movies

셰익스피어 리어왕 맥베스는 옛 쿼런틴 시대의 작품

by 헨리맘 2020. 12. 10.

전 세계가 쿼런틴된 듯한 지금의 일상은 셰익스피어 시대에도 낯설지 않았다. 16세기 흑사병(bubonic plague)의 발발로 인해 런던 인구의 1/3이 이 전염병에 걸리며 수시로 극장 문은 굳게 닫혔다 한다. 타운에서 연극이 열리면 많은 사람들이 모일 걸 우려해 예방 차원에서 취해진 조치였다. 당대 극장은 희로애락의 인간사 스토리를 보러 온 사람들이 늘 꽉 찼던 곳이라 위험성이 더 크다 여겨졌다.

(theathlantic.com 참고)

 

심지어 종교 선동가들은 "the cause of plagues is sin (전염병의 원인은 죄)"이며 "the cause of sin are plays (죄악의 원인은 연극)"이라 해 "the cause of plagues are plays (전염병의 원인은 연극)"이라 할 정도였으니 당시 런던 극장은 여는 날보다 닫는 날이 더 많았다. 이런 부적절한 결론을 내린 논리적 오류가 사회 일면에서는 수용될 만큼 흑사병이란 전염병의 위력이 당대에도 컸을 것이다.

 

다만 실상은 셰익스피어에겐 전염병이 연극을 낳은 게 맞는 듯싶다. 1606년 극장이 또다시 문을 닫으며 당시 셰익스피어는 연극 활동을 할 수 없었고 쿼런틴 시기 사방에 공포와 죽음이 만연한 환경 속에서 큰 영감을 얻어 그의 4대 비극이라 불리며 칭송받는 작품 중 리어왕 (King Lear)과 맥베스 (Macbeth) 둘 다 이 시기에 썼다.

 

거장의 쿼런틴과 인생작 탈고, 묘하게 어울리는 느낌까지 든다. 

 

리어왕은 어릴 때 읽어본 듯 하다. yes24를 찾아보니 리어왕과 맥베스 두 권이 합본인 책 소개에는 셰익스피어가 "집중적으로 비극을 쓰던 시기"에 나왔다 설명되어 있다. 두 작품 모두 인간 정체성에 대한 깊고 면밀한 탐구를 풍성한 상징, 은유 및 풍자/서정적 언어로 그렸다 한다. 우울한 당대 전염병 시기, 그가 왜 집중적으로 비극을 쓰게 된 건지 알게 되니 대가의 통찰력에 더한 존경심이 든다. 실제로 흑사병은 셰익스피어의 형제자매 중 3명의 목숨이나 앗아갔고 많은 젊은 동료 연극인들 역시 죽음을 맞았다. 

 

15년 전 런던 노벨로 극장(Novello Theatre)으로 남아공 친구와 함께 셰익스피어의 연극인 Twelfth night (십이야)를 보러 간 적이 있다. 연극을 과연 내가 이해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셰익스피어의 희극을 보며 대략 스토리를 따라가며 다른 이들과 함께 웃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셰익스피어의 본 고장에서 봤던 연극이라 더 감흥이 남달랐는지도 모르겠다. 반면 당시 관객석에 나 말곤 없는 듯했던 아시안 여자애가 배우들에게 좀 신기했는지 무대 위 배우들과 난 여러 번 눈을 마주쳤다. 옆에 앉은 내 친구도 전체 관객석 내 몇 안 되는 흑인이었던 것도 같다. 늘 내게 맛있는 인도식 치킨 요리를 해주던 이 친구도 문득 보고 싶어 진다. 

 

 

 

Twelfth night, 1623

 

 

 

아직 끝나지 않은 최현대판 팬데믹 세상에 살며 누군가는 셰익스피어 같은 열정을 새 작품에 쏟고 있겠구나 싶어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광고 게재 제한으로 마음 상했던 감정을 추스르고 담대하게 코로나가 종식되기 전까지는 글을 쓰자는 생각도 들었다. 

 

 

 

King Lear, Title Page of the 1608 Quarto Edition

 

 

 

끝으로 리어왕에서 나온 유명한 명언을 공유해본다.

 

“Nothing will come of nothing. (무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 King Lear (Act I, Scene I)

 

리어왕에게 아첨하는 두 딸과는 달리 막내딸이 자기의 신념대로 침묵했을 때 리어왕이 한 말이다. 막내딸은 "my love’s more ponderous than my tongue (내 사랑이 말보다 무거울 것이다)”는 신념이 있었지만 리어왕은 눈 앞의 감언이설을 더 사랑해 막내딸의 진실함을 읽지 못한다. 이로 인해 그의 비극이 시작된다. 

 

 

“When we are born, we cry that we are come to this great stage of fools. (우리가 세상에 태어날 때 울음을 터뜨리는 건 바보들이 가득한 큰 무대 위로 나오게 되기 때문이다)” – King Lear (Act IV, Scene VI)

 

리어왕의 가장 유명한 대사로 알려져 있다. 셰익스피어는 stage를 세상에 비유해 새로 태어난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는 이유가 바보들로 가득한 혐오스러운/부조리한 세상에 태어난 걸 깨닫게 되어서라 하였다. 그 태어난 아이도 결국은 세상의 바보들 중 하나로 커가며 언젠가는 그 아이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혐오스러운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혐오스럽지 않은 바보로 나이 먹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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