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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apting to daily journeys

텍사스/휴스턴 기록적 한파 48시간 정전 & 그 후기

by 헨리맘 2021. 2. 20.

[ 02/19/21 금 ] 

오늘 아침 눈을 뜨며 전기가 여전히 들어와 있다는 데에 안도했다. 전쟁 같던 이번주가 어찌 지나갔는지 돌이켜보니 정말 내가 겼던 일이 실화였나 싶다. 텍사스 전역이 80년 만의 기록적 한파로 인해 처참한 한주를 보냈는데, 그 생생했던 휴스턴 상황 경험기를 들려드리려 한다.

 

(그럼 이제 시간을 되돌려 보겠습니다...)

 

 

[ 02/14/21 일 ]

영하로 떨어지며 추워질 거란 예보와 함께 밤부터 Freezing Rain (얼음비: 비와 섞여 내리는 얼음이 나무 등 물체에 닿아 얼음이 형성되는 현상) 및 Ice Pellets (얼음 알갱이)가 내렸다. 처음 보는 얼음비는 백야드 나무잎들 위에 내리면서 얼어 붙었고, 죽지 말라고 야자수 뿌리를 미리 옷가지로 쌓아두었지만 잘 버틸 수 있을지 우려가 되었다. 참고로 휴스턴 겨울 날씨는 평균 영상 10도 정도라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날씨는 사람뿐 아니라 식물들에게도 낯선 날씨였다. 

 

화요일까지 날씨가 안 좋을 예정이라 해 헨리 학교 역시 미리 화요일은 온라인으로 대체된 상태였다. 이땐 화요일까지 가족 함께 편히 쉬면 되겠구나 생각했다.

 

 

[ 02/15/21 월 ]

Presidents' Day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 생일 기념)라 공휴일이었다. 이른 아침 눈을 뜨니 신랑이 새벽 5시쯤 전기가 나갔다고 한다. 진짜? 그리고 밤새 눈이 왔다. 텍사스에 살며 휴스턴에서는 처음 보는 눈이었다. 온 동네 전기는 나갔지만 눈 쌓인 이날 아침 풍경은 애들과 썰매를 끌고 집 옆 호숫가로 나가거나 우리 가족처럼 눈을 밟으며 집 앞 동네를 산책하는 사람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처음 눈 보고 신나 백야드 뛰어다니던 해리 (Feb, 2021) 

 

 

눈 쌓인 야자수들

 

 

 

집앞 눈쌓인 풍경

 

 

 

밤사이 한파로 (80년 만의 강추위였다고) 휴스턴의 절반이 전기가 나간 거였는데, 이때까진 반나절 지나면 전기가 들어오겠지 했다. 일단 텍사스는 다른 주와는 단독으로 전기를 공급한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텍사스 전역 곳곳의 정전 사태 복구가 쉽지 않았지만 전기회사에서는 하루면 전기가 들어올 예정이라 했다. 낮부터 헨리 친구들 중 하나둘 전기가 들어온 집들이 생겨나긴 했다.

 

전기가 끊기니 난방이 안 되었지만 전날의 온기가 남아 집안은 저녁이 될 때까진 훈훈했다. 다행히 우리집 수도는 이상이 없었고 개스 스토브라 먹는 데도 큰 이상은 없었다. 다만 밤이 되며 추워지기 시작했고 한번도 써보지 않았던 Fireplace (벽난로)를 켜고 하루밤을 보냈다. 난로이지만 그 앞만 따뜻하지 전체적으로 식어가는 집을 훈훈하게 하기엔 역부족이었지만 그나마 없는 것보단 도움이 되긴 했다.

 

학교는 이번주 금요일까지 날씨로 인해 닫는 게 결정되었고 날씨는 이틀이 아닌 이번 주 내내 추울 예정이라  했다. 결국 날씨가 이렇게까지 추울 줄 미리 알지 못했던 것도 이번 사태의 원인이기도 했다.

 

 

 

벽난로가에 온가족 옹기종기 보낸 첫밤

 

 

 

[ 02/16/21 화 ]

아침에 일어나니 집이 완전 냉골인데다가 전기는 여전히 들어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그나마 되던 데이타도 잘 안 터져 핸드폰도 완전 먹통이나 다름 없었다. 친구들, 지인들과 서로 안부 연락을 주고 받았지만 점차 문자도 실시간 전송이 되지 않기 시작했다. 집도 너무 추워져서 옷을 껴입고 벽난로 앞에 있어도 냉기를 다 없앨 수 없었고 이불/담요는 다 꺼내 두르고 가만히 기다리는 것 말곤 할 게 없었다. 

 

이틀째 간단하게 컵라면, 구운 치킨 등으로 밥도 대충 챙겨 먹다가 간단히 우유 등 먹거리도 살겸 주변 상황도 볼 겸 신랑이 자전거로 집 근처 HEB(마트)를 다녀왔다. 들어가기까지 엄청나네 긴 줄을 서야 했고 들어가서도 이미 유제품, 고기류, 빵 등은 이미 거의 동난 상태였다. 신랑은 시퍼런 바나나와 쥬스 등 몇 가지만 집어 들고 돌와왔다. 

 

 

 

집근처 마트 줄선 모습

 

 

텅빈 마트 진열대

 

 

결국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헨리 친구네 중 전기가 좀 빨리 들어온 집에 부탁해 아들내미는 보냈는데, 이때도 전화 연락이 바로바로 안되서 간신히 문자를 주고 받을 수 있었다. 또한 우버도 될 턱이 없고 전기가 안되니 거라지 도어를 열 수가 없어 그집에서 급기야 헨리를 데리러 왔다. 눈온 후 제설 작업이 전혀 안되어 도로 상황 역시 최악이었는데 컴컴한 동네를 뚫고 와줬던 헨리 친구 아빠가 너무 고마웠다. 도로 위 신호등도 다 이미 고장이 난 상태였다 한다. 칠흙같은 어둠이란 말이 딱 맞게 동네 전체가 좀비가 나올 법한 그런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 02/17/21 수 ]

난롯가 옆에서 자다가 부엌에서 쿠쿠밥솥이 갑자기 말을 하는 바람에 깨어났다. 새벽 3시쯤이었다. 거의 48시간을 다 채우고 드디어 전기가 돌아왔다. 어찌나 기뻤는지, 하지만 추워서 너무 몸을 웅크려서인지 온몸이 아프고 찌뿌둥한 가운데 더 잠을 청했다. 아침에 아들내미를 데리러 가는데 도로 곳곳에 얼음이 아직 녹지 않아 있었다. 주유도 해야 하는데 주유소마다 기름도 다 떨어진 듯 했다.

 

 

 

주유소 동난 기름 (빨간색 커버는 주유불가일 때 표시)

 

 

 

이틀 간 식었던 집은 난방을 해도 바로 따뜻해지진 않았다. 그래도 전기가 들어온 게 어딘가!! 게다가 데이타도 되니 핸드폰으로 전반적 상황을 파악해보니 여전히 텍사스 전체가 복구된 게 아니었다. 아울러 넥스트도어앱을 보니 동네 곳곳에 수도 파열 등 이슈가 많이 있었다. 친구네 집 중 하나도 다락 위 수도가 동파되어 부모님 댁으로 피신 중이라 했다. 우리 옆집 역시 수도가 살짝 파열된 듯해 지나가는 길에 알려주었는데, 다행히 크게 터진 건 아닌 듯 했다. 아울러 옆옆 이웃 아저씨는 혹시 먹을 물 필요하면 자기집에 물 많으니 오라며 친절한 말씀도 해주었다. (위기 때 서로 돕는 따뜻한 휴스턴 사람들!!)

 

 

 

넥스트도어앱에서 본 다락 수도 동파된 집 처참한 상황

 

 

 

그러던 중 전기 들어온지 15시간이 지난 후, 저녁 6시쯤 또 전기가 나갔다. 안그래도 전기회사가 전기를 로테이션해 공급할 수 있다 하긴 했지만 이미 꽤 길게 48시간이나 나갔던 우리 동네 전기를 또 끊어버리다니 할말이 없었다. 이번엔 한번 경험을 한 터라 다들 옷을 겹겹이 입고 다시 동면 태세 모드에 돌입했다. 앞으로는 전기가 들어오면 무조건 배터리를 충전해야 겠다며 먹통이 된 핸드폰을 던져 두고 다시 Fireplace에 불을 켰다.

 

집이 식어가던 차 다행히 밤 10시가 넘자 전기는 다시 들어왔다. 당시 들려오던 쿠쿠밥솥 소리가 어찌나 반가웠던지. 그러나 또 다시 나갈까 하는 생각에 안심이 되지 않았다. 이어 상수도 상태가 나쁘다며 물을 무조건 끓여서 사용하라는 Boil Water Notice를 받았다. 정전 사태에 이어 물까지 난리, 이웃 아저씨는 하비(2017년 휴스턴에 닥쳤던 허리케인) 때는 더 했다 하는데 자연재해는 정말 무섭구나 느껴지기도 했다. 

 

 

[ 02/18/21 목 ]

아침에 자고 일어나 전기가 나가지 않았다는 사실에 새삼 다시 감사함이 느껴졌다. 상황을 보니 휴스턴의 98프로 정도 이제는 전기가 복구되었다는데 여전히 2프로의 지역은 정전인 채로 살고 있다는 상황에 마음이 아팠다. 텍사스의 소식을 접한 한국에 계신 분들도 안부를 물어왔고 그래도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후라 담담히 상황을 알려드렸다. 

 

다만 주말까지는 영하권의 날씨가 계속될 예정이라 아직 끝까지 안심을 못하는 상황이긴 했지만 헨리 친구들네도 이젠 다들 전기가 들어온 듯 했다. 아울러 근처 주유소 여러 곳에 확인해 결국 오후에 차 주유까지 하고 나니 다소 마음의 안정이 돌아오는 듯 했다. 다만 온몸이 아파오는 듯해 몸살약을 먹었는데 역시 백야드 식물들도 이번 강추위를 겪고 너무 처참한 몰골이었다. 

 

 

 

축쳐진 잘 버틴듯한 야자수들

 

 

 

미안하다 사실 얘네들 이름도 모르는데 처참한 몰골의 식물들

 

 

 

[ 02/19/21 다시 금 ]

이젠 눈도 많이 녹고 전기 상황도 좋아지고 도로 상황도 다소 나아진 듯 하다. 다만 여전히 휴스턴 내 7천 가구는 전력 공급이 되지 않았고 거의 5천 가구 수도 동파 신고를 했다고 한다. (전기는 99프로 복구된 상태) 아무쪼록 춥기로 예정된 주말까지 더 큰 일 없이 휴스턴 및 텍사스 전역이 잘 무탈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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