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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t-eats, Must-visits, & Must-sees

뉴욕, 뉴욕! T.rex가 있는 자연사 박물관 (American musuem of natural history)!

by 헨리맘 2020. 6. 21.

뉴욕을 처음 간 건 회사 출장 때문이었다. 월스트릿이 있는 세계 파이낸스 중심지, 트렌디한 패션, 다채로운 문화가 넘치는 도시를 한껏 기대하고 갔지만, 워낙 빡빡한 일정으로 타임스퀘어 밤거리를 보고 온 게 다였다. 아쉽지만 당시 뉴욕은 내게 큰 감흥을 남기지 못했다. 

 

한편 당시 출장 목적이었던 하이엔드 소비자를 리쿠르팅해 모였던 맨하탄 부자들 그룹 좌담회(Focus Group Discussion)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데, 마이클 잭슨을 꼭 닮은 모더레이터와의 토론에서 그들은 일 년에 몇 번씩 한다는 해외여행에 대해 꽤나 길게 얘기꽃을 피웠다. 여유가 있는 그들을 공략하고자 엿봤던 초고소득층 소비자의 라이프를 기반으로 마케팅 보고서를 써야 했던 난 그들을 꽤나 부럽게 바라봤던 게 기억이 난다. 

 

미국에서 산 지 일 년 뒤 크리스마스 여행으로 뉴욕을 택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한창인 뉴욕의 거리는 나를 들뜨게 했다. 내가 살던 오클라호마는 신랑의 회사 동료 (=오클라호마 토박이) 말에 의하면 15~20년 가량 미동부 지역보다 느리게 가는 곳이라 했다. 그런 곳에 있다가 뉴욕을 가니  맨해튼의 드높은 빌딩 숲은 반짝반짝거렸고, 뉴욕은 잠들지 않는 도시 그 자체였다. 그냥 걸어만 다니는데 신나고 느낌이 남달랐다. 오래간만에 거리 곳곳을 걸으니, 사람 구경도 하고 마냥 좋았다. 가장 가고싶던 곳으로 뉴욕을 손꼽았던 헨리도 어디를 가던 앞장서 가며 흥분했다.

 

오클라호마는 대부분 차로 이동했기 때문에 걸어다닐 일이 적었다. 아울러 차로 이동하는 거리도 대부분 한적한 편이었고 가끔 걸을 수 있는 다운타운을 갈 때면 그나마 걷는 이들이 너무 적어 눈에 띄었다. 그와 달리 뉴욕은 거리마다 쏟아져 나오는 듯한 인파 속에서 바삐 걸으며 그 많은 사람들 속에 묻혀 있는 느낌이 편하기도 했고, 또한 그 인파 속에서 오래간만에 느껴지는 생동감과 에너지가 좋았다.

 

아울러 한국식당이 적고 한국 음식이 귀한 살던 곳과는 달리 아예 한 골목에 즐비한 채 가득한 맛있는 식당이 가득한 코리안 타운은 우리 가족에게는 무엇보다도 완벽한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헨리는 연신 허허허 하며 첫날 자유의 여신상 기프트샵에서 산 선글라스를 내내 쓴 채 거리를 누볐는데, 특히 가는 곳마다 맛있던 한국 음식은 아들을 더 웃게 만들기도 했다.

 

 

 

뉴욕 여행 내내 헨리와 함께 한 자유의여신상 선글라스 (Dec, 2015)

 

 

여행 내내 거리를 누비는 기쁨을 만끽할 수는 없었다. 헨리가 제일 기다리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Empire State Building)을 보기로 한 날 비가 왔다. 비가 그쳐 가보니 아무것도 안보이니 저녁에 다시 오란다. 그날 저녁 간신히 올라가 본 야경은 잔뜩 흐린 하늘로 덜 반짝였지만, 또 그 나름의 운치가 있었다. 예전에 출장 때는 맨하탄 빌딩숲을 걸으며 건물들이 너무 높아 압도되는 느낌도 받았던 것 같은데, 이번에 다시 보니 그 높은 빌딩들에 둘러쌓이고 바라보던 광경이 난 그간 그리웠던 것 같았다. 

 

 

 

잔뜩 흐린 날 Empire State Building 야경

 

 

 

듣던바처럼 쾌적하진 않던 지하철도 헨리에게 또 다른 재미거리여서 길 가다 마주치는 역이 있으면 꼭 한 두 역이라도 타곤 했다. 대중교통이 발달한 한국에서 살던 내게도 뉴욕의 지하철은 약간 지저분하더라도 지하철을 기다리는 시간, 역을 오르내리는 계단, 지하철을 오가는 사람들 모두 다 익숙하고 그간 그립던 모습이기도 했다.

 

그중 지하철역 바로 옆에 있던 자연사 박물관은 어릴적 공룡 마니아인 헨리가 T.rex가 있어 특히 좋아하던 곳이다. 

 

화석으로 복원되어 공룡관 중앙에 떡 버티고 있는 T.rex는 역시 뼈만으로도 공룡의 제왕다웠다. 아들 엄마면 공감할 듯한데, 헨리 어릴 적 가장 좋아한 게 티라노사우르스, 바로 약칭으로 T.rex이다. 헨리는 공룡 관련 역사에서부터 크고작은 다양한 공룡 뼈 하나하나 세세히 살펴보고 아빠 폰까지 가져가 공룡뼈와 셀카도 엄청 찍었다. 심지어 어릴 때 깨비퀴즈에서 나오던 T.rex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공룡관을 한참 헤집고 다녔던 기억이다.

 

 

T.rex 앞모습

 

 

아마 아들의 공룡 사랑은 8살이던 이때가 끝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공룡 있는 박물관은 그 뒤로도 여러 곳 있었는데, 이때만큼 T.rex에 환호하고 푹 빠져 즐거워하던 헨리 모습을 본 적은 없다. 어쩌면 그래서 뉴욕의 자연사박물관에 있던 T.rex가 기억 속에 깊게 남아있을지 모른다. 

 

T.rex에 열광하던 아들이 어느덧 사춘기라는 게 난 가끔 믿기지 않는다. 그 때 나는 미국이 낯설은 30대였고, 지금은 가끔씩 한국이 낯설어지는 내 모습에 놀라는 40대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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