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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icing...

샌프란시스코는 미국 소비자를 대변했을까?!

by 헨리맘 2020. 6. 26.

직장에서 하던 일이 마켓 리서치였다. 보통 신제품 출시 아이디어를 도출하거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방향성을 얻고자 다양한 소비자 조사를 했다.

 

소비자 조사는 흔히 뉴스나 신문에서 봤던 여론조사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선거철만 되면 "서울 및 4대 도시(대전, 대구, 광주, 부산) 거주하는 만 20~65세 성인남녀 대상으로 총 2,500명 샘플에 대해 여론조사"를 했더니 누구를 더 선호하였다는 걸 들어봤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업도 제품을 출시하기 전 소비자의 목소리를 궁금해한다.

 

내가 한국에서 주로 하던 일은 이런 소비자의 목소리를 잘 들어 마케팅에 적용하는 일이었다.

 

기업별로 연간으로 진행되는 여러가지 마켓 리서치 조사가 있다. 가장 대규모로 진행되는 건 소비자 세그멘테이션(Segmentation) 조사이다. 이건 대개 지역별 대표 국가를 선정해서 광범위하게 진행하는 편이다. 예컨대, 난 모바일 PC 시장 세그멘테이션 조사를 위해 미국, 영국, 중국, 브라질, 러시아 및 한국 총 6개국에 걸친 소비자 정량 조사를 했다. 디테일한 소비자 라이프 스타일 파악을 위해 정성조사도 함께 했다. 이런 조사 결과로 얻어진 데이터는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해 High-end 제품부터 Low-end까지 소비자 위주로 카테고리화한 타깃 시장을 세분화하고, 이에 맞춰 타깃별 제품 라인업, 세일즈 자료 등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마케팅의 기본 토대가 되는 조사라 볼 수 있다. 

 

아울러, 주요하게 진행되는 조사로는 제품 출시 전후로 나뉠 수 있다. 제품 출시 전에는 제품 개발이나 상품기획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선행 기술에 대한 조사,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방향성 탐색을 위해 실시하는 사전 소비자 반응 조사 등이 있다. 제품이 출시 된 후 실시하는 조사로는 제품별 개선 아이디어 도출을 위한 조사 혹은 집행한 광고 효과를 측정하는 소비자 조사 등이 있다.

 

이 중 가장 재미있는 조사는 사실 제품 출시 전의 조사일 것이다. 

 

제품 관련 마켓 조사를 하다보면, 예상보다도 훨씬 기술에 대해 잘 알며, 종종 개발/상품기획자보다도 각종 제품을 구입해 테스트해 쓰고 있는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가 많았는데, 이들의 아이디어를 듣는 일은 늘 경이로우면서 즐거웠다.

 

한번은 크리에이티브 워크샵(Creative Workshop)이라고 해, 기업 담당자와 소비자가 함께 워크샵을 하며 기존 제품 개선책을 찾아보며 아울러 신제품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시간을 가진 적이 있다. 당시 개발자, 마케팅 담당(=나), 상품기획자와 대학생 중 얼리 어답터로 선정했던 소비자가 함께 모여 1박 2일 동안 제로에서 출발해 아이디어 회의 워크샵을 했다. 회사 안에서는 경직될 수 있기에 당시 회사를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워크샵이 열렸고 팀별로 다 같이 밤이 늦을 때까지 서로 제품에 대해 아이디어를 논하던 그 열기는 어느 때보다도 뜨거웠던 기억이다. 

 

그리고 마켓 리서치를 할 때에는 대개 제품에 따라 중요한 국가를 선정해 보통 몇 천명씩 정량조사를 하는데, 글로벌 기업인 전 회사는 제품을 많이 그리고 잘 팔아야 하는 "미국"이 늘 일 순위 마켓이었다. 그런데 이런 조사는 "몇 퍼센트가 어떤 걸 좋아한다"만 결과로 도출된다. 그래서 "왜 좋아하는지, " "어떻게 개선해야 더 좋아할지"를 알기 위해 소비자 좌담회(Focus Group Discussion)도 더불어 진행했다. 

 

 

 

소비자 좌담회 (FGD) 진행 모습 (Apr, 2013)

 

 

 

소비자 좌담회는 모더레이터 진행 하에 관련 제품 사용 행태 및 이유, 라이프 스타일, 기존 사용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평가, 개선 아이디어, 기업 이미지 등을 편안한 분위기에서 물어보며 그들의 주관적인 생각을 듣는 자리이다. 비슷한 부류끼리 그룹을 나누는데, 보통은 대학생 그룹, 20~30대 직장인 그룹, 40~50대 직장인 그룹 등으로 나눠 한 그룹당 8명을 넘지 않도록 하고, 약 두 시간 정도 진행되는 게 일반적이다. (참고로, 8명 이상일 경우에는 사람이 많은 편이라 단편적인 답변만을 듣을 수 있고, 그런 경우 추후 보고서 쓸 때 내용이 없어 당황하기 십상이다.) 때에 따라서는 특정 직업군별로 그룹을 나눠서 진행하거나 타깃 세그멘테이션에 맞는 그룹을 모으기도 했다.

 

좌담회 진행 때 내가 있던 곳은 소비자 좌담회 진행 모습을 볼 수 있는 One-way mirror room(보통 한국에서는 "뒷방"이라고 칭함)이라고 해서 좌담회 진행자들이 보기에는 거울이지만 그 뒷면에 작은 방이 있어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외국에서 좌담회 진행 시에는 시작 전에 뒷방에 소비자들 목소리를 듣기 위해 와서 보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거울을 향해 손짓을 하며 인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이런 목적으로 매해 서너 번은 출장길에 올랐는데, 당연히 최우선 순위 마켓이던 미국을 가장 많이 왔고 그 중에서 제일 많이 왔던 곳이 샌프란시스코였다. 좌담회 지역은 대개 대표성 있는 도시로 서부 한 곳, 동부 한 곳 선정했다. 동부의 경우 뉴욕, 워싱턴 DC, 보스턴 등 도시를 매번 바꾼 반면 반면 서부는 늘 샌프란시스코가 대상이었다. 그 이유는 문화, 엔터테인먼트 위주의 LA 보단 IT 중심인 샌프란시스코에는 얼리어답터(Early Adopter) 성향 소비자가 많아 그 목소리를 듣는 게 더 적합하다고 판단해서였다. 샌프란시스코에 방문해 보면 다양한 인종도 많고 도시가 세련되면서 복잡해 보여 전형적인 미국의 바쁜 대도시의 모습 그 자체였다.  

 

 

 

출장 때 San Francisco 어딘가 (June, 2012)

 

 

그런데 미국에 살며 자꾸 들던 생각이 있다. 다른 주로 여행을 가거나 이사한 친구들 얘기를 들을 때면, 미국이란 나라는 어느 한 두 도시로 대변하기엔 어려웠다. 주별로 보면 마치 다른 나라인 양 날씨, 교육, 사람들 성향이나 정치적 성향도 다르다. 그러니 샌프란시스코만 가보고 그들의 목소리가 미국 소비자 전체를 대변한다고 하기엔 너무나 큰 착각을 했던 건지 모른다. (물론 예산에 맞춰야 하니 소비자 조사 도시를 무한정 늘릴 수는 없었다.)

 

내가 그간 살았던 주는 2개 주밖에 안되고, 이제껏 가 본 도시들을 따져봤을 때도 열 개 정도인데 일단 같은 주를 벗어나면 어느 곳도 동일하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특정 몇 개의 대도시가 미국 전체 소비자 목소리를 반영한다고 하기에는 미국은 너무 넓고 도시별로 트렌드나 특정 제품 유행의 속도도 달랐고 사람들의 성향도 다른 듯했다. 특히 처음 미국에 와서 몇 년 간은 예전 직장에 대한 잔상이 남아 실제로 내가 아는 미국인들의 그 브랜드에 대한 인식이나 실제 생각이 어떤지 궁금해 자꾸 물어보곤 했다.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현지 미국인들의 의견을 옆에서 듣게 되기도 해 흥미로웠고 그런 이유로 나름대로는 꾸준히 혼자만의 소비자 조사를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예전에 일할 때 미국 조사 시, 한번쯤은 LA로 바꿔도 보고, 댈러스/휴스턴, 덴버, 애틀랜타 등 다른 도시를 선정해 들여다봤다면 또는 다른 중소도시 등도 선정해봤다면 또 다른 유의미한 미국 소비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이제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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