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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감성, 필브룩 뮤지엄(The Philbrook Museum of Art)

by 헨리맘 2020. 7. 25.

오클라호마에 살 때 들었던 미국인 친구 얘기 중에 동감할 수 없는 말이 있었다. 바로 털사(Tulsa)가 "오클라호마의 파리(Paris)"라던 말인데, 난 듣자마자 어찌 그 도시가 파리일 수 있단 말인가 싶었다. "너 진짜 파리에 가보고 하는 말이야?" 되묻고 싶었지만, 그녀는 내 좋은 친구였고, 그런 친구에게 그러면 안되니 난 그저 가만히 있었다.

 

(내가 허니문 때 봤던 파리의 모습은 털사와는 분명히 달랐다.)

 

이 말은 시트콤 프렌즈(Friends)를 봤다면, 뉴욕에 사는 챈들러가 털사로 발령이 나며 여자 친구인 모니카와 대화 중에 하던 말이다. 그 에피소드에서 챈들러는 털사로 떠났지만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모니카가 있는 뉴욕으로 돌아왔다.

 

Chandler: Y'know how people say that Tulsa is the Paris of Oklahoma?

(그거 알아? 사람들은 털사가 오클라호마의 파리라고 한다고.)
Monica:     What? Who says that?
 

(뭐라고? 누가 그렇게 얘기하는데?)
Chandler: People who've never been to Paris. 

(파리에 한번도 안 가본 사람들이...ㅋ)

 

물론 도시 자체는 파리와 전혀 달랐지만 그 곳에는 파리와 같은 감성을 풍기는 곳이 한 곳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필브룩 뮤지엄(Philbrook Musuem)이다.

 

이 곳은 개인 소유였던 대저택을 현재는 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특이한 뮤지엄이다. 1920년대에 르네상스 스타일로 지어진 건물이라고 하는데, 예전에 이곳에서 석유개발 사업에 성공한 부호 비즈니스맨의 대저택이었다고 한다. 내부는 지하부터 이층까지 있고, 아름답게 가꿔진 정원과 작은 호숫가가 있는데 마치 옛날 조선시대 사대부 가문의 99칸 한옥집의 미국 버전이 아닐까 싶다. 한국과 다를 게 있다면 자본주의가 발달한 미국답게 이곳의 부자들은 학자보다는 비즈니스맨인 경우가 많다. 

 

 

 

필브룩 뮤지엄 전경 (May, 2015)

 

아름답게 다듬어진 정원 모습

 

 

일단 건물 자체도 구조가 특이한데 내부는 맨 위층에서 아래까지 내려다 보이고, 자연채광이 뛰어난 곳이다. 미술관 소장품으로 미국 인디언 원주민의 아트부터 현대 아트까지 다양한 미술품이 갖춰져 있는데, 모네(Monet), 피카소(Picasso) 등의 예술작품도 만날 수 있었다. 지하에 있는 카페는 샌드위치가 맛있어서 주중에는 브런치 카페로도 많이 이용되는 곳이다.

 

난 당시 내 친구들 중에서는 가장 나이가 많은 친구였던 부동산 소개업자 할머니와 브런치를 먹으러 처음 이 곳에 갔다. 가끔씩 브런치를 했던 이 할머니는 영국인인데, 첫 남편은 일본인이었고 현재는 두 번째 남편인 미국인과 오클라호마에 사시는 분이셨다. (결혼을 두 번 하는 건 미국에서는 정말로 꽤 흔했다.) 처음엔 집 렌트 때문에 알게 되었지만, 살면서 이런저런 도움도 받고 가끔 점심도 함께 먹는 사이로 발전했다. 이 분은 나이가 드셔서도 일을 열정적으로 하시던 분인데, 우리는 친구에는 나이가 상관없다며 서로 친구라 생각했고 잘 통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했을 나이 차이지만, (아마도 우리 친정 엄마보다도 나이가 많으실 듯했으니) 미국에서는 나이 차이가 나도 좋은 친구일 수 있었다. 

 

 

 

 

 

Philbrook Museum of Art

The Philbrook Museum of Art is set in the historic home of Waite and Genevieve Phillips with expansive formal gardens located in Tulsa, Oklahoma.

philbrook.org

 

 

주말에는 뮤지엄이 게다가 공짜인데, 뮤지엄 내부도 멋지지만 주로 정원을 천천히 둘러보며 산책하는 삼삼오오의 가족 단위 혹은 연인들이 많았다. 아주 잘 가꿔진 정원은 파리의 감성이라 할 수 있을만큼 화려하고 아름다운데, 그런 자연이 아름다워서 한 번 방문할 때면, 천천히 길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곳이 바로 이 곳이다.

 

프렌즈의 챈들러와 모니카가 이 곳을 만일 방문했다면, 털사가 가진 파리의 감성을 살짝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나도 조각상 못지 않아! (Mar, 2018)

 

 

한편 필브룩 뮤지엄은 여름 방학이면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아트캠프 프로그램을 열었는데, 그 내용이 재미있고 알찼다.

 

헨리도 여름이면 참가하던 여러 가지 서머캠프(Summer Camp) 중 아트캠프도 꽤 즐거워했는데, 이런 아트캠프는 특정 프로그램을 일주일씩 진행했다. 매 프로그래별로 겹치는 게 없이 다양했다. 또한 아트캠프라고 해서 단지 아트 작품 만들기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점심시간이나 오후 간식타임 후 밖에서 아이들끼리 뛰어노는 시간을 많이 주는 편이었다. 어찌 보면 헨리와 그 또래 다른 남자아이들은 실내에서 하는 아트 작품 만들기보다는 매일 밖에서 뛰어노는 그 자유시간을 더 즐기는 듯했다.

 

벌써 이 긴 여름 방학이 어느덧 끝나가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미국은 여름방학 시기가 주마다 좀 다르긴 하지만, 대개 5월 말에서부터 8월 중순까지 장장 거의 세 달 간의 여름 방학을 갖는다.) 여름이면 오늘 소개한 필브룩 뮤지엄뿐 아니라 미국 전역의 뮤지엄에 아이들의 아트 혼이 꽉 찼었을텐데, 올 여름은 아트 캠프 없는 방학을 다들 집에서만 보냈을 거라 안타깝다. 

 

필브룩 뮤지엄도 올해 여름 뛰어노는 아이들 소리와 그들의 아트 혼이 무척이나 그리웠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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