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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t-eats, Must-visits, & Must-sees

텍사스에 산이 있다? 없다?

by 헨리맘 2020. 8. 10.

내가 가본 도시 중 가장 좋아하는 미국의 도시는 "덴버(Denver)"이다. 좋아하는 여러 이유 중의 하나는 어느 곳에서나 산을 볼 수 있으며 현대적이라는 점 때문이다. 산이 내게 있어 그렇게 중요한 존재였는지 미국에 와서 살며 처음 알았다. 서울/경기권에서 살면서 주변에 멀리서라도 산이 보였던 것 같다. 따져보면 가깝게 산이 있던 건 아니지만, 병풍처럼 혹은 내 생활의 배경처럼 산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던 그런 당연한 존재였던 것 같다.

 

미국에 와서 산이 거의 없는 지형인 오클라호마에 살며 도시 전체가 플랫(flat)한 그 도시 풍경에 익숙해져 갔다. 가끔 로드트립으로 들르던 댈러스가 있는 텍사스의 광경은 휴스턴과 마찬가지로 오클라호마처럼 편평한 광경의 연속이자 지평선은 대개 눈높이 즈음을 벗어날 일이 없었다.

 

어느덧 난 미국인들 친구에게 당시 살던 곳과 한국의 다른 점에 대해 얘기할 때면, 한국은 도시 곳곳에 크고 작은 산이 많다고 답하고 있었다. 한 번은 산을 보고 싶다는 내 말에 미국인 친구가 데려간 곳이 있었다. Turkey Mountain이라 불리던 그곳은 이름은 산이지만, 산이라 하기엔 너무나도 지형이 편평했다. 그리고 나무가 무성하긴 했지만 산속에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인 시원한 그늘 하나 없이 낮은 언덕배기를 땀을 뻘뻘 흘리며 땡볕 속에 하이킹해야 했다. 도시의 일부 지역 이름은 Hill(언덕)이었지만, 한국으로 치면 동네 야산 수준도 안되는 낮은 굴곡이 있는 수준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휴스턴 역시 편평한 지형의 대표 주자가 아니라면 서러울 정도 수준이다. 지평선이 눈높이인 건 이제는 편안한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나쁘게 말하면 밋밋하고 멋이 없는 광경인 셈이다. 어찌 보면 넓지만 지루한 광경을 가진 도시라 휴스턴은 다른 대도시에 비해 대단한 특색이 있다거나 아름답다거나 하는 느낌을 갖기 어렵다. 다만 산이나 언덕은 없지만 옆에 가까운 바다가 있어 언제라도 손쉽게 바다를 보러 갈 수 있어 큰 위안이 된다. 

 

한편 올해 여름 한국에 갈 계획이었다. 중국을 시작으로 한국의 급격한 코로나19 환자 급증에 사두었던 티켓은 일찍이 환불을 했고, 그때는 이 바이러스가 올해 온 세계를 강타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예전 사스처럼 아시아에서만 머물 것으로 예상하고 우리는 한국 대신 미국 내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자연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옐로우스톤(Yellowstone National Park)이나 미국보다 더 멋진 아름다운 자연을 볼 수 있다고 사람들이 말하는 캐나다 벤프(Banff)를 계획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결국 계획에만 그치고 말았다. 

 

이미 포스팅에서 보신분도 계시겠지만, 우리 가족은 겁도 많고 이런 때는 돌아다니지 않는 게 최고라는 생각에 휴가도 짧게 근교로만 다녀왔다. 그런데 휴스턴에 사는 미국인 친구 중에 이 시기를 틈다 캠핑카를 끌고 15일 간 4,500 miles (약 7200 km)를 돌며 7개의 국립공원을 여행하고 온 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페이스북에 가는 국립공원마다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서 네 가족의 사진을 올렸는데, 대부분의 사진에는 광활한 자연과 그녀의 가족만 있을 뿐이었다. 난 이런 시기 그런 여행을 감행한 그 가족의 용기도 대단했지만, 그들이 여행한 거리는 한국으로 치자면 서울과 부산을 왕복 10번을 다녀온 셈이었다.

 

그 친구네가 제일 처음 갔던 곳이 빅벤드 국립공원(Big Bend National Park)이라는 곳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곳이라 찾아보니, 오~ 텍사스에 있다. 게다가 내가 그리워하던 "산"이었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여기는 텍사스니까 우리도 주말에나 잠깐 한번 다녀오면 되겠지 라는 생각에 가는 길을 지도에서 찾아봤다. 하하하, 난 텍사스의 거대한 스케일에 또한번 놀라고 말았다. 광활한 산의 기를 느끼러 가기엔 너무 갈 길이 멀고 험난해 보였다. 

 

 

 

집에서부터 빅벤드 국립공원까지 가는 길은 약 8시간 소요

 

 

 

그래도 좋은 발견은 텍사스 내에도 산이 있다는 점이었다. 사진 상으로는 내가 가본 그랜드 캐년 못지않은 광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자연을 보존하고 야생 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해 주별로 조성된 국립공원이 미국에는 60여 개 정도가 있는데, 텍사스에는 2개의 국립공원이 있다.

 

친구네가 국립공원 정복 여행을 위해 처음 들렀던 빅벤드 국립공원 (Big Bend National Park) 외에도 국립공원은 여기서 꼬박 9시간이 걸리는 과달루페 산맥 국립공원 (Guadalupe Mountains National Park)이 있다. 아울러 가장 멀게 10시간을 운전해 가야 하는 El Paso(엘 파소: 멕시코 국경과 맞닿은 텍사스 도시)에는 프랭클린 산맥(Franklin Mountains) 등 산의 기를 느낄 수 있는 곳들이 우리 주 안에도 있긴 했다. 단 우리와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이 우리의 발목을 잡았다. (주말에 짧게 다녀오려면 그냥 이틀 내내 운전만 해서 돌아갔다 찍고 바로 돌아와야 한다. ㅋ)

 

 

 

예전에 가족여행 갔던 그랜드 캐년 (Nov, 2015)

 

 

 

미국 왔던 첫 해 땡스기빙 기간에 맞춰 우리는 "미국의 자연" 하면 떠올랐던 그랜드 캐년 국립공원(Grand Canyon National Park)에 갔다. 당시 느꼈던 자연의 광활함은 세상에 태어나 처음 느껴본 느낌이었는데, 너무 자연의 모습이 경이롭고 감동스러워서 핸드폰을 연신 눌러대며 사진을 찍었지만 사진으로는 그 풍경을 생생하게 담을 수가 없었다. 사진보다는 눈으로라도 광경을 더 많이 더 담고 싶어서 쳐다보고 또 쳐다보며 구경했던 곳이 그랜드 캐년이었다.

 

우리는 그랜드 캐년 접근성이 좋으면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숙박/음식 등이 편리한 곳인 Flagstaff(플래그스태프)란 도시에 머물면서 그랜드 캐년을 오가는 길에 아리조나를 느낄 수 있는 붉은 바위산이 있는 마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 등도 구경했다.

 

참고로, 그랜드 캐년 여행 시 첫날 하루는 미국 여행 시 잘 사용하는 "Tripadvisor(트립어드바이저)" 앱을 통해 미리 예약한 투어를  했다. 밴을 타고 드라이버가 곳곳을 데리고 가며, 장소별로 자세한 설명을 해주는 관광이었는데 나름 만족스러웠어서 추천한다. 여행지별 정보를 Tripadvisor에 찾아보면, 도시별로 여러가지 투어가 나와있다.

 

당시에 우리와 함께 여행한 일행은 두 가족이 더 있었는데, 뉴욕에서 온 가족이 기억 난다. 아빠와 두 딸인 그 가족은 매번 다람쥐를 볼 때마다 "다람쥐다~"하며 생전 처음 봐서 신기한 듯이 소리를 질렀지만, 우리 가족은 그때마다 "하하~ 우린 백야드에 살고 있는 다람쥐 가족이 있어." 하며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실제로 오클라호마에 살 때 우리집 백야드에는 다람쥐 가족이 종종 놀러 왔고, 도로에서 차에 치여 죽은 가여운 다람쥐를 보는 일은 너무 흔한 동네 경험이었다.  

 

미국은 국립공원에 가보면, 그야말로 자연 그 자체를 그대로 두고 최소한의 시설만 갖춰져 있고, 편의시설이나 고도의 안전시설 등이 만들어져 있지 않은 곳이 흔하다. 

 

당시에 신랑은 그랜드 캐년에 왔으니 직접 아래까지 걸어가 산을 느껴봐야 한다더니만,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깨끗하게만 깎여진 절벽을 낀 좁은길에 들어서자마자 신나게 뛰어내려 가던 헨리를 급히 불러올렸던 기억이 난다. 그것도 위에서 길을 내려본채 움직이지 않고서 정지 자세였다. 영문을 모르는 아들이 다시 길을 돌아오니, 그냥 우리는 포장도로 위로만 다니며 광경을 구경하는 게 낫겠다며 바로 입장을 바꿨던 게 기억이 난다. 올라가고 내려오는 사람끼리 잘 알아서 피해 좁은 길을 따라 절벽을 바라보며 하는 하이킹이 그의 예상에는 없었나 보다. 

 

그랜드 캐년 내내 떠올랐던 초등학교 때 배운 한국 산맥 노래가 떠오른다. "우리나라 북쪽엔 장백산맥, 함경도에 함경, 마천령..." 초등학교 때 선생님께 수업시간에 배웠던 듯 싶은데, 이런 노래를 어릴 적 만들어 외워 불렀던 걸 보면 한국은 산이 많은 나라가 맞다. 아~ 이 밋밋한 광경을 벗어나 텍사스 산을 직접 볼 날이 언제 올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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