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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ies of life - Books & Movies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넷플릭스 영화 & 영어소설)

by 헨리맘 2020. 8. 23.

안나 카레니나(Anna Karenina) 영화를 예전에 출장길 비행기에서 봤는데, 너무 푹 빠져서 가는 내내 보고 또 봤던 기억이 있다. 최근 넷플릭스에 있길래 한번 더 이 영화를 봤다. 인상적인 장면으로 나를 또 한번 사로잡았던 건 비극적 사랑의 주인공인 안나와 브론스키의 러시아 고전 댄스신이었다.

 

옛 러시아 귀족들의 화려한 의상과 남녀의 커플댄스 위주의 무도회장 댄싱 씬이 길게 이어진다. 블랙 드레스의 안나와 흰색 제복 수트의 브론스키가 마주 보고 커플 댄스를 추는데, 이들은 아무런 대화도 없이 오로지 눈을 바라보며 손목을 혹은 등을 마주하며 열정적으로 춤을 춘다. 하지만 그 댄싱 장면에서 느껴지는 두 사람의 긴장감, 두려움과 피어오르는 듯한 사랑, 서로에 대한 호기심 등 두 남녀의 다양한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남다른 인생을 산 비극적 여주인공으로 안나 역은 키이라 나이틀리(Keira Knightley), 그녀와 사랑에 빠지는 브론스키 역은 애런 테일러-존슨(Aaron Taylor-Johnson), 그리고 안나의 남편으로 주드 로(Jude Law)가 나왔다. 키이라 나이틀리는 그녀 자체가 안나라 해도 무방할 만큼 연기가 탁월했고, 그녀는 입술로도 연기를 하나 싶을 정도로 미묘한 감정을 잘 전달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처음 봤던 애런 테일러-존슨은 지상에서 가질 수 있는 외모인가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미남이었는데 비극적 사랑을 연기하는 눈빛 장인이라 더 매력적이었다. 제도권 결혼생활에서 행복했던 안나의 남편 역인 주드 로는 나이 든 모습에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해 주었다.  

 

한편 미국에 오기 전  마지막 해에 한국에서 즐겨봤던 댄싱9이란 프로그램이 있었다. 수준급 댄서들이 나와 팀으로 혹은 솔로로 댄스를 통해 매주 주어지는 주제에 대해 다양하게 표현하며 춤을 추었다. 그때 인상적이었던 이선태가 다른 두 명의 댄서와 "끝사랑"이란 노래에 맞춰 현대 무용을 했던 게 떠올라 여기 함께 공유해 본다. 이들 세 남녀는 안나 카레니나와는 무관하지만, 그들이 추던 당시의 댄스가 왠지 서글픈 안나의 인생과 묘하게 통하는 것 같다. 

 

 

 

댄싱9 "끝사랑"

 

 

 

소설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1878년에 쓰여진 이 소설은 톨스토이 스스로도 자신이 집필한 진정한 첫 소설이라 평했을 정도로 걸작으로 평가되는 고전이다. 800페이지나 넘는 긴 영어소설이었지만, 대가의 클래식 책을 영어로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책을 집었던 것 같다. 톨스토이는 간결한 문체가 특징적이었고 글의 전개 방식이 최근 소설의 구성과 비슷하게 등장인물 별로 번갈아 진행되며 인물들의 유기적인 관계 및 그들의 세밀한 감정선을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둔다. 두꺼운 사이즈의 압박으로 인내심을 요하는 책이지만, 다 읽고 나서는 다시 한번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애착이 생기던 책이다.

 

어릴 적에 톨스토이 책을 읽어볼 기회는 없었던 것 같다. 톨스토이의 "죄와 벌"은 그 제목만으로 주는 압박감이 있어 왠지 어려울 듯 해 집에 있던 책인데 손대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안나 카레니나"를 뒤늦게 읽게 되며 톨스토이에 대해 찾아봤을 때 그는 이 소설을 쓴 이후 레닌의 러시아 혁명에 뜻을 같이 해 실천하는 지식인의 역할을 하고자 했던 걸 알게 되었다. 아울러 그의 깔끔한 문체는 많은 영미 문학가들에게 최고라는 칭송을 받는다고 한다. 그는 독자로 하여금 충분히 인물의 삶을 이해하며 공감할 수 있게끔 하는 게 큰 특징이다. 톨스토이는 문학의 목적이 단순한 재미나 스토리텔링을 위한 게 아니라 다양한 캐릭터의 인물군상을 보여줌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더 세상을 잘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안나 카레니나"는 아울러 그 문체가 물이 흐르듯 아름답고 결함 없게 쓰여진 소설로 평가 받는다. 

 

영화에서는 비중이 적어 잘 그려지지 않았지만, 소설에서는 안나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레빈은 톨스토이가 가장 이상적 인간형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영화는 안나에 집중했고, 난 그 선택이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어 성공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레빈은 전형적인 바른생활 사나이의 모습을 보이는데, 특히 그는 귀족이면서 당시 러시아 사회가 갖고 있던 계급을 뛰어넘어 직접 농사를 지으며 민중의 삶을 직접 살아가고자 한다. 레빈과는 비교되어 남다른 일생을 산 안나는 제도권 사회를 벗어나는 일탈로 비극적 생을 맞이하게 그려지지만, 톨스토이도 마음 한편으로는 그런 삶을 꿈꿨던 건 아닐까 생각한다.  

 

브론스키가 안나 카레니나에 대해 묘사했던 인상적이었던 인용문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He stepped down, trying not to look long at her, as if she were the sun, yet he saw her like the sun, even without looking.

(그는 그녀가 태양인 양 길게 그녀를 보지 않으려 노력하며 계단을 내려왔다. 하지만 그는 보지 않으려 해도 태양이 보이듯이 그녀를 보고 말았다.)

 

In that brief glance Vronsky had time to notice the restrained animation that played over her face and fluttered between her shining eyes and the barely noticeable smile that curved her red lips.

(그 짧은 순간 얼핏 브롱스키는 그녀의 팔딱거리는 듯한 빛나는 눈빛, 빨간 입가에 살짝 묻어나는 웃음을 머금은 그녀의 얼굴에서 절제된 생동감을 느꼈다.)

 

브론스키가 안나와의 첫 만남에 대해 묘사한 두번째 인용문은 내가 시도한 한국말 번역이 좀 어색한 듯 해 참고 삼아 찾아봤다. 한국에서 나온 세 권의 번역본에서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번역이 되어 있다. 만일 러시아어를 안다면 직접 원문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EconomyChosun을 참고해 문학동네 버전을 함께 올려본다. 

 

이 짧은 시선으로 브론스키는 재빨리 그녀의 얼굴 가운데서 노닐기도 하고 반짝이는 두 눈과 살포시 짓는 미소로 실그러진 붉은 입술 사이를 팔딱팔딱 뛰어 돌아다니기도 하는 짓눌린 생기를 알아챘다.

 

 

 

비극적 두 남녀, 안나와 브론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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