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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s to live in US

미국에서 어전트케어(Urgent Care)이용하기 (feat. 아들 수난시대)

by 헨리맘 2020. 9. 29.

미국 살던 첫해 이맘때 쯤인 듯 하다. 학교 끝나고 차 라이드 줄에 서서 내 차례가 되었다. 차를 타는 헨리 얼굴빛이 영 이상해 보였고 늘  생글거리던 웃음도 사라진 시무룩한 얼굴이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팔이 아팠다고 한다. 아~ 이건 팔이 아픈 정도가 아니라 심하게 다쳤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오른팔을 아예 들지 못했다. 몽키바(Monkey bars: 놀이터에 있는 철봉/구름다리)에서 리세스 때(Recess: 점심 시간 후 운동장에서 노는 휴식 시간)에 떨어져 아팠는데 이후 2시간이나 지나도록 헨리는 참았던 것이다. 아들 말로는 많이 아팠던 건지를 잘 몰랐다 했다.

 

그때 처음 이용했던 게 소아과 어전트 케어 (Pediatric Urgent Care)였다. 사실 미국에 처음 사니, 원래 이용하던 소아과는 일찍 문을 닫아 어딜 가야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일단 큰 병원 응급실에 가서 접수를 하고 대기석에 앉아있는데, 기다리는 시간이 끝이 없었다. 게다가 대기하는 다른 환자들은 거의 중증 환자 이상쯤은 되어 보여 공포감마저 조성했다. 반면 헨리 얼굴은 점점 사색이 되어가고 팔은 아파오기 시작했고 보기에도 엄청나게 부어오르고 있었다. 안되겠어서, 접수처에 빨리 될 수는 없겠냐 물었더니 애를 데리고 이리로 가라면서 접수처 직원이 메모장을 건네주었다. (아! 지금 생각하면 너무 감사한 직원분~!)

 

적혀있는 곳으로 부랴부랴 갔다. 소아과 어전트 케어, 그것도 집 근처 10분 거리에 있던 곳을 어찌 알고 소개해준 건지 그곳은 소아과 끝나는 시간인 4시경에 오픈을 했다. 참고로 healthline.com에 따르면 이용 시 가격이 다소 비싼 미국 응급실 대비해서 어전트 케어는 주치의 대용으로 매우 위급한 상황이 아닌 경우 좀더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으며 병원이 문을 닫는 시간에 오픈을 해 접근성이 좋은 클리닉이다.

 

우리도 그날 소아과 어전트 케어에 도착해 많이 아파 힘들어하던 아들은 거의 기다림 없이 접수 후 바로 진료를 받았다. 엑스레이를 찍고 헨리 손목에 금이 간(Fracture:골절) 걸 알게 되었고 아들은 Splint(부목/반깁스)를 찼다. 아울러 정형외과(Orthopedics) 몇 곳을 추천해주었는데, Splint는 임시 치료라 정형외과 갈 일이 또 남아있었다. 정형외과에 다 전화를 해 가장 빠른 병원으로 예약을 했다. 사실 미국 병원은 가기 전 예약이 바로 다음날 원하는 대로 바로 되는 게 아니라서 이런 어전트 케어는 정말 요긴한 곳이다.

 

며칠 뒤 간 정형외과에서 헨리는 Cast(깁스)를 찼고 한 달 간을 깁스와 살았다. 다행히 어려서(당시 8살) 뼈가 잘 붙을거고 나중에 커서는 골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흔적도 없을 거라하던 정형외과 의사 말에 너무 감사했다. Cast가 불편했겠지만 아들은 놀 거 다 놀고 학교도 잘 다녔다. 단, 학교에서는 꼭 아플 경우 바로 선생님이나 간호사에게 얘기해야 한다고 주의를 받았다. (학교에서 벌어진 사고이기 때문에 학교의 책임을 걸고 넘어지는 부모도 있고, 미국은 소송이 많은 나라이니 이해가 되었다.) 

 

 

 

펌킨타운 처음 찬 보라색 깁스와~ (Oct, 2015)

 

 

 

지금도 그날 픽업 시 처음 봤던 아들의 표정, 아픈 애를 데리고 응급실 갔다 막막해하다가, 다시 어전트 케어 가서 한숨 돌리고 치료 받고, 또 정형외과를 몇 곳이나 알아보며 전화하며 버벅대고,... 하루 동안 정신이 나간 듯한 날이었던 게 생생히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당일 모든 걸 마치고, Splint 찬 착한 아들내미 한다는 말이 자긴 왼손잡이인 게 약간 싫었는데 이렇게 오른팔을 다쳐 왼손으로 편하게 쓸 수 있어 좋다는 말을 해 한순간 내 긴장과 피로를 풀어줬던 것도 기억이 난다. 

 

 

 

짧은 두번째 깁스 차고 친구들과 잘~ 놀던 헨리 (Oct, 2015)

 

 

 

달라스 아쿠아리움에서 깁스 후 써야했던 보호장갑 낀 아들 (Nov, 2015)

 

 

 

그날 하필 한국에서 온 출장자가 있어 하루종일 바빴던 신랑은 아픈 애를 데리고 혼자 다 처리한 데에 대해 고마워하면서 내가 미국 사람 다 되었다했다. 늘 그렇듯이 뭐든 경험하며 미국에 대해 점점 알게 되지만 아프거나 다쳐 병원가는 일은 지양하고 싶은 일 중 하나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 뒤로도 아들은 멀쩡하게 집 백야드에서 잘 놀다 튀어나온 메탈기둥에 다리를 찍혀 14번이나 스티치를 하러 소아과 어전트케어를 갈 일이 다시 생겼다는 걸 밝히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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