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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apting to daily journeys

마법천자문과 why책 (feat. 할아버지 사랑)

by 헨리맘 2020. 6. 24.

헨리 초등학교 때, 매달 헨리 앞으로 박스가 배달되었다. 다름 아닌 한국에 계신 외할아버지께서 보내주셨던 책꾸러미.

 

마법천자문은 아들 유치원 때 한참 유행이었는데, 한자를 모티브로 한 학습만화책이다. 한자 학습보다는 손오공이 악당을 물리치고 겨루는 스토리를 아들은 좋아했겠지만, 최근 48권까지인가 거의 끝까지 읽었다. 가끔 신간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려서, 헨리 외할아버지는 서점에 또 좋은 책이 있다며 "why"책도 골라 함께 보내주셨다. 마법천자문은 어떤 편은 반복해 읽곤 해 책이 다 너덜너덜해지기도 했고, why 시리즈 중 "사춘기와 성"과 "마술과학"은 헨리가 여러 번 읽었던 생각이 난다.

 

사실 우체국에 내는 배송비가 책값보다 더 비쌌겠지만 할아버지는 손자를 위해 서점에 들르고 신간이 나왔나 보고, 다른 좋은 책들이 있는지 살펴보시는 게 큰 즐거움이라 하셨다. 가끔씩 마법천자문, why책 말고도 수수께끼 책, 만화 고사성어 책 등도 섞여 왔고, 한국에서 우체국 박스가 오는 날은 헨리에겐 재미난 책을 읽는 즐거움으로 가득한 날이었다.

 

why책은 여러 가지 방면에 대한 상식과 지식이 가득한 책이었는데, 어릴 적 읽었던 다양한 분야의 과학 지식을 헨리는 여전히 기억하기도 하고, 관련 지식을 학교에서 배우게 될 때마다 이미 why책에서 다 배워서 알고 있었다며 으쓱해했다. 만화와 섞여 있지만 책의 내용이 알차고 흥미롭게 펼쳐지기 때문에 꽤 어려운 내용도 아주 쉽게 아들에게 흡수되는 듯했고, 매 달 아들이 좋아하는 주제로 두어 권을 고르고 책을 기다리는 기쁨도 컸다.

 

마법천자문이나 why책 모두 평가하자면 꽤 영리한 만화책이라 생각한다. 천자문만 보자면, 만화가 아니었고 한자와 연결된 재미있는 스토리가 없었다면 그 많은 한자를 공부한다는 게 어른이라도 쉽지 않았을 터라 아이들이 즐겁게 한자와 익숙해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why책 역시 물리, 화학, 상대성 이론 등과 같은 순수 과학이나 철학, 한국사 등의 인문학을 만화로 풀어내 친근하게 아이들에게 접근하는 방식이 훌륭했고, 그렇기 때문에 아들이 거의 전 권을 매번 반복하듯 읽으며 좋아했던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책꽂이에 있는 why책과 마법천자문

 

why책 읽는 헨리 (June, 2015)

 

 

 

내가 어릴 적에도 아버지는 그러셨다. 공부하라는 잔소리는 한 번도 하지 않으셨지만 늘 책을 사주시는 아버지셨다.

 

난 책 읽기를 꽤 좋아하는 편인데, 어쩌면 아버지가 꾸준히 사주셨던 책들 때문에 그런 습관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또 당시 경제신문이나 영자신문에서 읽으면 좋을만한 기사를 스크랩해 주시기도 하시고, 딸에게 가끔은 편지도 써주시는 로맨틱한 아버지셨다. 아버지 손엔 늘 책이 들려 있었고, 사업상 항상 일본어 공부를 하셨다. 엄마 말씀으로는 내가 중학교 때 두 분이 가셨던 일본 여행에서 아버지의 일본어 실력이 여행 가이드보다 나아서 사람들이 다 아버지께 와 물어보곤 했다 하셨다.

 

그런 아버지는 70이 넘으신 지금도 (코로나 바이러스 이전까진) 손자가 미국에 있기 때문에 잘해야 한다며 복지관에서 매일 영어회화를 배우셨다. 가끔은 헨리에게 영어 카톡을 보내기도 하셨다.

 

아버지 말씀으론, 중학교 때 영어 선생님이 돌아가며 책을 읽혔다 한다. 아버지 차례 때 아버지가 열심히 큰 소리로 영문을 읽는 도중, 선생님이 그만 읽으라며 발음이 안 좋다며 크게 지적을 했다 하셨다. (발음이 안 좋으면 고쳐주면 되지, 학생을 주눅들게 하는 선생님이란...) 아버지는 그 때 이후로 수학은 잘했어도 영어공부에는 흥미를 좀 잃었다 하시며, 손자 때문에 배우는 영어 회화가 재미가 크다 하셨다. 

 

 

한국 방문 때 퇴촌 선산 근처에서 할아버지와 헨리 (July, 2017)

 

 

 

예정대로 올해 여름에 한국에 갔다면, 헨리는 아마 할아버지와 바둑 매치를 하고, 수영 대결을 했을 테고, 할아버지 옆에 잔다며 잠들기 전 할아버지가 지어 낸 옛날 얘기를 또 하라며 졸랐을 것이다. (더 이상 옛날 얘기 듣는 나이는 아닐지도...) 그보단 둘이 함께 가길 좋아했던 사우나에서 할아버지와 손자의 끝없는 수다가 이어졌을 것이다. 

 

어쩌면 3년 전 한국에서 둘이서 영화보러 간 그 날처럼, 할아버지가 버스 정류장을 헷갈려 헨리는 한참을 걸어 투덜대며 집으로 돌아왔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날 할아버지와 편의점에서 먹었던 붕어싸만코 맛은 헨리가 세상에서 먹었던 어떤 아이스크림 보다 맛있었다고 한다. 

 

 

 

부모님 미국 방문 때 Galveston 해변가 수영 후 할아버지와 손자의 낮잠타임 (June,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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