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털사(Tulsa) BOK center에서 열릴 예정인 트럼프 대통령 재선 캠페인 랠리로 뉴스가 떠들썩하다. 이미 1백 명쯤 신청했고, 내부에만 18,000명이 들어찰 예정이라 하니 이 시기 다들 큰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는 건 당연하다.
털사가 이렇게 뉴스거리가 되다니. 트럼프나 랠리보다 더 눈에 띄고 요즘 생각나는 털사는 내겐 익숙한 곳이다. 몇 년간 그곳에 살며 난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 배우고 적응했다. 털사에서 우리가 살던 동네는 털사 남부였는데 동네 이웃들 대부분 백인이었다. 아들의 초등학교에는 Pre-K부터 5학년까지 각 학년당 약 100여 명이 있었다. 역시 거의 대부분 백인, 아시안이나 흑인은 우리 애 빼고 한 학년에 서너 명 있을까 말까 할 정도였다.
Bruno Mars 공연을 했던 털사 다운타운에 있는 BOK center. 우리는 그곳에서 볼거리라 했던 Rodeo (소타기 대회?) 구경도 하고 생각보다 지루했던 아이스하키 경기도 봤었다. 그때도 아마 관중 중 아시안은 거의 우리뿐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그곳은 어디를 가던 우리 빼곤 다 백인만 있는 그런 곳이었다. 물론 우리만 달라 느끼던 묘한 불편함이 늘 있었지만, 내가 알게 되고 만나고 친했던 백인들은 사귀기까지 시간은 걸렸지만 전혀 다름이 문제 되지 않았다. 운 좋게 참 좋은 사람들과 함께 지냈었다는 생각이 든다.
털사에 있을 때 헨리 아빠는 매년 루트66 (Route 66) 마라톤에 참가했다.
미국 경제 발전, 서부 개척과 유서가 깊은 Route 66는 시카고와 LA를 횡단하는 도로명이다. 8개의 주를 잇는 이 도로는 털사를 관통한다. 처음 하프 마라톤(Half Marathon)을 참가했던 신랑은 뛰다가 중간에 너무 힘들어 그냥 걷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키 큰 백인 아저씨가 다가오더니, 같이 뛰자고 손을 내밀었다 한다. 그 사람 덕분에 신랑은 중간에 주저앉지 않고 끝까지 완주할 수 있었다고 고마워했다. 이런 게 시골인심 일지는 모르겠지만, 털사 사람들은 서로 남을 돕는 데 주저함이 없고 친절했다.
털사에서는 매해 계절에 따라 열리는 큰 행사가 하나씩 있었는데, 주변 지인들은 매번 다들 참석하는 듯해 보였다. 대도시에 비해 규모가 작고 문화 공간도 다양한 건 아니었지만, 매주 금요일마다 다운타운에서는 크고 작은 아트 행사가 열였다. 그리고 그 외 시즌별 열리는 큰 행사에 내 주변 친구들, 지인들은 꼭 한 번씩은 매해 가는 듯해 보였다. 한국에 살 때 늘 바쁘고 다채로운 행사가 열리는 서울/경기권에서 살아 매해 같은 행사를 연례행사처럼 참석하는 게 낯설었지만, 그 경험이 또 재미있기도 했다. 크고 작은 이벤트가 주변 친구/지인들의 동네잔치 같은 인상이었는데, 우리도 어느덧 익숙해져 갔던 기억이다.
특히 날씨 좋은 가을에 행사가 풍성했는데, 9월 경부터 대부분의 가정은 아이들과 함께 펌킨타운(Pumpkin Town Farms)에 들렀고 10월 중 열리는 털사 놀이공원(Tulsa State Fair)에 갔다. 휴스턴에 와보니 가을을 즐길 수 있는 펌킨 타운은 숫자가 꽤 많아 어디를 골라 가야 하는 건지 당황했지만, 털사에서는 고를 여지가 크게 없었다. 그래서 같은 곳의 문화를 늘 다 같이 함께 공유하고 즐기는 커뮤니티 느낌이라 점점 친근하게 생각되었던 것 같다.
백인 커뮤니티에 섞여 살았던 경험 외 황당하게도 털사하니 도넛이 떠오른다. 난 미국인들이 그렇게 도넛을 많이 먹는지 털사에 살기 전까진 전혀 몰랐다. 아침으로 도넛을 먹는 건 물론, 애들 학교 파티니 생일 파티 때 간식으로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도 도넛이었다. 동네 곳곳에 도넛 가게가 즐비했는데, 보통 도넛 가게는 새벽에 문을 열고 이른 오후 문을 닫았다. 또 당시 털사에서 한국분들이 많이 하시는 비즈니스 중 하나가 도넛 가게이기도 했다. 우리 집 근방에 있던 한국분이 운영하시던 도넛 가게가 하나 있었다. 도넛을 사러 갈 적마다 감사하게도 커피를 어찌나 공짜로 많이 얻어먹었는지 모른다.
느긋하고 평온한 시골 동네라 살면서 힘들기도 했지만, 털사는 후한 인심과 따뜻한 정이 있던 곳으로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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