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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apting to daily journeys

털사, 그곳의 기억

by 헨리맘 2020. 6. 20.

내일 털사(Tulsa) BOK center에서 열릴 예정인 트럼프 대통령 재선 캠페인 랠리로 뉴스가 떠들썩하다. 이미 1백 명쯤 신청했고, 내부에만 18,000명이 들어찰 예정이라 하니 이 시기 다들 큰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는 건 당연하다.

 

털사가 이렇게 뉴스거리가 되다니. 트럼프나 랠리보다 더 눈에 띄고 요즘 생각나는 털사는 내겐 익숙한 곳이다. 몇 년간 그곳에 살며 난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 배우고 적응했다. 털사에서 우리가 살던 동네는 털사 남부였는데 동네 이웃들 대부분 백인이었다. 아들의 초등학교에는 Pre-K부터 5학년까지 각 학년당 약 100여 명이 있었다. 역시 거의 대부분 백인, 아시안이나 흑인은 우리 애 빼고 한 학년에 서너 명 있을까 말까 할 정도였다. 

 

Bruno Mars 공연을 했던 털사 다운타운에 있는 BOK center. 우리는 그곳에서 볼거리라 했던 Rodeo (소타기 대회?) 구경도 하고 생각보다 지루했던 아이스하키 경기도 봤었다. 그때도 아마 관중 중 아시안은 거의 우리뿐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그곳은 어디를 가던 우리 빼곤 다 백인만 있는 그런 곳이었다. 물론 우리만 달라 느끼던 묘한 불편함이 늘 있었지만, 내가 알게 되고 만나고 친했던 백인들은 사귀기까지 시간은 걸렸지만 전혀 다름이 문제 되지 않았다. 운 좋게 참 좋은 사람들과 함께 지냈었다는 생각이 든다.

 

 

 

Rodeo 때 BOK center (Aug, 2016)
Rodeo 경기 모습

 

 

털사에 있을 때 헨리 아빠는 매년 루트66 (Route 66) 마라톤에 참가했다.

 

미국 경제 발전, 서부 개척과 유서가 깊은 Route 66는 시카고와 LA를 횡단하는 도로명이다. 8개의 주를 잇는 이 도로는 털사를 관통한다. 처음 하프 마라톤(Half Marathon)을 참가했던 신랑은 뛰다가 중간에 너무 힘들어 그냥 걷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키 큰 백인 아저씨가 다가오더니, 같이 뛰자고 손을 내밀었다 한다. 그 사람 덕분에 신랑은 중간에 주저앉지 않고 끝까지 완주할 수 있었다고 고마워했다. 이런 게 시골인심 일지는 모르겠지만, 털사 사람들은 서로 남을 돕는 데 주저함이 없고 친절했다. 

 

털사에서는 매해 계절에 따라 열리는 큰 행사가 하나씩 있었는데, 주변 지인들은 매번 다들 참석하는 듯해 보였다. 대도시에 비해 규모가 작고 문화 공간도 다양한 건 아니었지만, 매주 금요일마다 다운타운에서는 크고 작은 아트 행사가 열였다. 그리고 그 외 시즌별 열리는 큰 행사에 내 주변 친구들, 지인들은 꼭 한 번씩은 매해 가는 듯해 보였다. 한국에 살 때 늘 바쁘고 다채로운 행사가 열리는 서울/경기권에서 살아 매해 같은 행사를 연례행사처럼 참석하는 게 낯설었지만, 그 경험이 또 재미있기도 했다. 크고 작은 이벤트가 주변 친구/지인들의 동네잔치 같은 인상이었는데, 우리도 어느덧 익숙해져 갔던 기억이다.

 

특히 날씨 좋은 가을에 행사가 풍성했는데, 9월 경부터 대부분의 가정은 아이들과 함께 펌킨타운(Pumpkin Town Farms)에 들렀고 10월 중 열리는 털사 놀이공원(Tulsa State Fair)에 갔다. 휴스턴에 와보니 가을을 즐길 수 있는 펌킨 타운은 숫자가 꽤 많아 어디를 골라 가야 하는 건지 당황했지만, 털사에서는 고를 여지가 크게 없었다. 그래서 같은 곳의 문화를 늘 다 같이 함께 공유하고 즐기는 커뮤니티 느낌이라 점점 친근하게 생각되었던 것 같다.

 

 

 

Route 66 Marathon 출발(/결승선)

 

 

백인 커뮤니티에 섞여 살았던 경험 외 황당하게도 털사하니 도넛이 떠오른다. 난 미국인들이 그렇게 도넛을 많이 먹는지 털사에 살기 전까진 전혀 몰랐다. 아침으로 도넛을 먹는 건 물론, 애들 학교 파티니 생일 파티 때 간식으로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도 도넛이었다. 동네 곳곳에 도넛 가게가 즐비했는데, 보통 도넛 가게는 새벽에 문을 열고 이른 오후 문을 닫았다. 또 당시 털사에서 한국분들이 많이 하시는 비즈니스 중 하나가 도넛 가게이기도 했다. 우리 집 근방에 있던 한국분이 운영하시던 도넛 가게가 하나 있었다. 도넛을 사러 갈 적마다 감사하게도 커피를 어찌나 공짜로 많이 얻어먹었는지 모른다. 

 

느긋하고 평온한 시골 동네라 살면서 힘들기도 했지만, 털사는 후한 인심과 따뜻한 정이 있던 곳으로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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