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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apting to daily journeys

잊혀졌던 싸이월드 사진첩 속 싱가폴 생활

by 헨리맘 2020. 7. 16.

얼마 전에 접했던 싸이월드 기사 생각이 나 뒤늦게 내 미니홈피를 백업받았다. 내 싸이월드는 십년 전쯤에 멈춰 있었는데, 마지막에 올려졌던 앨범은 잊고 살던 싱가폴 모습이었다.

 

2009년에서 2010년 초까지 잠깐 우리 가족은 싱가폴에 살았다. 그때 헨리는 24개월이 좀 넘었을 무렵이었다.

 

싱가폴로 온 가족이 나갔던 건, 육 개월 간 신랑과의 기러기 생활을 마친 뒤였다. 사실 우리 부부는 이때가 두 번째 기러기 생활이긴 했는데 (첫 번째도 언제 소개할 날이...), 처음과 달랐던 건 이번엔 아들이 있다는 점이었다. 당시 기러기 부부였던 시절, 신랑과 스카이프로 영상통화를 하던 때이다.

 

싸이월드를 백업받으려고 이것저것 들쳐보다 보니, 눈에 띄는 그때의 다이어리 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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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3.] 

저번 주말, 스카이프로 아빠랑 대화 중이던 아들 (물론 듣고만 있지만...ㅎ)
 
아빠가 집에 있을 때 하던 놀이를 하더라...
의자에 숨기. 화면으로 얼굴이 보이니까,
같이 있다고 느낀 건지, 게다가 책도 가져다가 노트북 앞에 앉아서
내가 읽어주니 계속 아빠더러 읽어달라고...

 

살짝 안스럽지만, 그래도 화면 속의 아빠랑도 잘 놀고
착한 우리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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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이 싱가폴에서 인턴쉽을 시작할 때 맞춰 결국 나는 아들을 데리고 싱가폴로 떠났다.

 

6년 8개월 다녔던 정든 회사생활을 뒤로, 다 접고 싱가폴로 나갈 마음을 먹게 된 계기는 스카이프 때문이었다. 떨어져 사는 시간이 길어지며 아빠와 통화할 때 화면 속의 아빠 얼굴 만지고, 아빠가 그 화면 속에 있다고 생각하는지 그 속으로 자꾸 들어가고 싶어 하는 아들을 보고, 내가 그때 굳게 결심한 게 "가족은 함께 살아야겠다"는 다짐이었다.

 

(뒤돌아 생각하니, 그때가 짧았던 내 첫번째 경단녀 시기였다.^^) 

 

잊고 있던 당시 아들의 어릴 적 행동들이 고스란히 사진에 있다. 인형과 친구 하기, 인형 손잡고 자기, 생수병 열 맞춰 세우기 등 지나고 나니 즐거운 추억거리로 회상하지만 당시 싱가폴 생활은 쉽진 않았다. 어딜 보내기엔 아들이 너무 어렸고, 신랑은 늘 바빴고, 난 처음 하는 육아로 우왕좌왕이던 시절이다. 그래서인지 그때를 생각하면 짧게 머물기도 했지만, 귀엽던 꼬꼬마 아들 모습 말고 싱가폴 생활은 떠오르는 게 많지는 않다.

 

 

아들과 인형 친구들 (Sep, 2009)

  

테디 베어 인형과 손잡고 자기

 

생수병 열 맞춰 세우기

 

 

싱가폴은 작지만 선진국의 면모를 갖춘 나라였다. 지도에서 보면 아시아의 점 같은 그 작은 나라 속 싱가폴리안의 자부심에 놀랐고, 4개의 언어(영어, 중국어, 말레이시아어, 인도어)로 나오던 TV를 보며 다양한 인종에 놀라기도 했다. 사실 거리를 거닐면, 내겐 그냥 다 비슷하게 동남아 스타일 중국인처럼 보이는 사람이 가장 주를 이루었다. 싱글리쉬(Singlish)라 하는 그들 특유의 영어 억양도 적응이 쉬운 건 아니었다. 

 

우리가 살던 곳은 Holland Village (홀랜드 빌리지)였는데, 마트, 카페나 음식점 등이 즐비하게 모여 있어 살기엔 편리한 동네였다. 다만 그 나라는 항상 덥고 습한데, 특히 내가 살기 시작한 9월은 우기가 시작되어 10월까지 계속되었다. 오후만 되면 하늘이 뚫린 것처럼 폭우가 내려서 아들과 어디 나갈 채비라도 다 할 때면, 하필 비가 폭우처럼 내리니 집에 머물러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아들과 했던 가장 큰 놀이는 책읽기(아들이 책을 골라오면, 내가 책을 읽어주기)였다.

 

항상 밤마다 자기 전에 읽어줘야만 아들이 잠들었던 책 3종 세트가 있다. "할까 말까", "곰사냥을 떠나자", "괴물들이 사는 나라" 이 세 권의 책은 하도 많이 읽어서 난 지금도 훤히 그 책들 안의 그림이 생각난다. 그때 헨리는 이 삼총사 책이 뭐가 그리 재미있었는지 매일 읽어줘도 매일 까르르 거리며 좋아했다. 

 

 

Holland Village 풍경

 

 

그래도 잊을 수 없는 건 역시 싱가폴에서 먹었던 망고이다.

 

싱가폴에서 꼭 먹어야 할 음식에 대해 누가 묻는다면, 난 첫번째로 "망고"라 답할 것이다. 망고는 아열대성 기후에서 자라는 과일이니 싱가폴산 망고는 어쩌면 제철과일이라 당연히 맛있겠지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혹은 미국에서도 그때처럼 싸고 달며 즙이 많고 맛있던 망고를 다시는 발견할 수 없었다. 

 

외국에 나와 살다보면, 친한 친구들이 내 곁에 없다는 게 가끔 그렇게 외롭고 슬프다. 그때는 더군다나 지금처럼 카톡 같은 메신저도 없었다.

 

그때 다행히 한 친구가 싱가폴에 살고 있었다. 같이 대학원 공부를 했던 친구라 이런저런 고민을 예전에 함께 나눴고, 늘 밝고 씩씩한 성격이던 그 친구가 싱가폴에 있다는 게 어찌나 든든했었는지 모른다. 당찬 성격을 가진 능력자 내 친구는 싱가폴에 있는 회사에 취직해 살고 있었고, 내가 싱가폴에 살던 그해 종종 맛집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었다. 그녀는 지금까지도 그곳에서 잘 살고 있다.

 

최근 그 친구와 카톡 대화를 하다가, 우린 나중에 더 나이가 들면 함께 유럽 여행을 하기로 약속했다. 난 일단 그 때까지 아들을 대학에 잘 보내고, 그 친구는 그때까지 더 열심히 돈을 벌기로 했다. (따져보니 앞으로 5년 남았다. 나이가 빛의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그때는 우리가 더 나이가 들겠지만, 오랜 친구와의 여행은 언제 해도 좋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2010년 우리 가족은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거치며 싱가폴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갔다. 싱가폴은 그간 찾지 않던 싸이월드처럼 내 머릿속에서 많이 잊혔었는데, 오랜만에 한번 추억해본다. 

 

인생은 늘 앞을 알 수 없지만, 다 지나고 나면 좋은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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