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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apting to daily journeys

일주일 7번 떡볶이 먹기

by 헨리맘 2020. 7. 11.

아들의 성향 중 하나는 뭔가에 꽂히거나 그걸 자기가 좋아하면 질릴 때까지, 정말 끝까지 그 한 가지에 집중하며 계속한다든지 혹은 그것만 계속 먹는다든지 하는 게 있다. 다행히도 난 이런 아들의 성향대로 원하면 하고 싶은 대로 끝까지 하게 내버려 두는 성향의 엄마이다. 그걸 지켜보고 신랑이나 혹은 친정 엄마께선 날 "보살" 엄마라 하기도 한다. (아들도 종종 그걸 인정하는 편이다.^^) 

 

최근 헨리가 꽂혀서, 그 간 미국에 와서 정말 많이도 만들었던 떡볶이를 이번엔 정확히 일주일 연속 매일매일 7번을 만들었다.

 

이젠 이런저런 음식이 다 지겨워지기도 해 새로운 시도로 치즈 떡볶이를 만들었더니 꽤나 맛있었다. 헨리는 맛있으면 먹다가 "와아~" 하는데, 탄성이 여러 번 나왔으니 정말 맛있기도 한 듯했다. (참고하는 앱은 "밥타임"이란 앱인데 내겐 없으면 안 되는 것 중 하나!)

 

 

일주일 매일 먹었던 떡볶이 요런 모습~

 

 

김치는 아예 안 먹고 매운 걸 대체적으로 잘 못 먹고 순한 음식을 좋아하는 헨리는 이곳에 사니 미국 음식도 매우 잘 먹는다. (김치 없이는 밥 못 먹는 헨리 아빠와는 완전히 반대 식성이다...)

 

반면 유일하게 아들이 좋아하는 매운 음식이 바로 떡볶이이다. 

 

아마도 아들의 꼬꼬마 시절, 유치원과 초등학교 1학년 때 한국에서 맨날 사 먹던 게 떡볶이여서가 아닐까 싶다. 물론 나도 어린 시절부터 즐겨 먹던 떡볶이는 지금도 좋아하는데, 손쉽게 곳곳에 있는 맥도널드처럼 한국에서는 어디서든 사 먹을 수 있던 떡볶이는 미국에서는 찾기 힘든 귀한 음식이었다.

 

오클라호마 살던 동네엔 떡볶이를 먹을 수 있는 식당이 딱 하나 있었는데, 맛이 별로였다. 그나마 있던 작은 한국 슈퍼에 냉동 떡을 팔아 그걸 샀는데, 나중엔 댈러스 갈 적마다 장을 보러 들리는 H Mart(에이치 마트: 대형 한인 마트) 안의 떡집에서 신선한 떡을 몇 덩이씩 사 왔다. 뿐만 아니라, 댈러스 H Mart 옆에 "김치"라는 음식점은 떡볶이를 먹으러 꼭 들르던 식당 중 하나였다. 휴스턴은 역시 대도시인만큼 떡볶이 떡을 사기도, 식당에서 떡볶이를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아들은 지금도 예전에 살던 한국 동네 떡볶이 집 얘기를 가끔 한다. 그 집에서 먹던 떡볶이가 정말 맛있었다고 하는데, 그 맛이 정말 맛있던 건지 아님 그나마 기억나는 한국에 대한 추억이 좋아서인지 헷갈리긴 한다. (내가 기억하는 그 집 떡볶이 맛은 맛이 별로...) 하긴 5, 6살 이전의 기억이 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싶지만, 헨리에게 물어보면 한국에 대한 기억은 딱 유치원과 초등학교 1학년 시절, 그러니 미국 오기 바로 전 그때뿐인 듯하다.

 

워싱턴 D.C. 에 사는 오랜 친구가 있는데, 난 그 친구의 어머니 생각이 날 때가 있다. 미국인 남편 따라 미국으로 시집오셨다던 어머니는 우리가 몇 년 전 친구네를 방문해 뵈었을 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미국에 오래 살았지만, 미국인은 아니야. 그런데 내가 기억하는 한국은 1950년대의 모습인데 내가 나중에 가본 한국은 너무 많이 달라져서 내가 알던 나라가 아니더라고..." 그때 친구의 아버지는 가만히 어머니의 손을 잡아주시며, "아니야. 당신은 이제 미국인에 훨씬 가깝지. 여기를 아주 잘 알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이 친구는 예전에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였던 2002년에 한국에 왔던 친구이다. 백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어머니 말씀으로는 다 크더니 갑자기 한국에 대해 알아본다며 한국에 가봐야겠다고 해 말리지 않았다 하셨다. 그 덕분에 우린 신랑이 내 남자 친구이던 그 시절 그때, 한국어학당에 다니던 그 친구와 우연히 친해진 인연으로 지금은 서로가 가정을 이룬 후까지 친구이다.

 

초등학생이던 아들이 중학생이 되고, 점점 미국 문화 속에서 여기 문화에 익숙해지는 걸 본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또 아들은 부모인 우리를 통해 혹은 언론을 통해 간접적으로 한국 문화를 접하고 떡볶이도 일주일에 7번이나 먹으며 살아간다. 한국에 대해 가급적 올바른 정보를 주고 잘 설명해주려고도 애쓰는데,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만 심어주기에는 가끔 접하는 한국의 소식이 우울할 때도 있고, 승부욕 강한 아들이 보기에 한국은 너무 작은 나라인 게 또 마음에 안 드는 듯하다. 아들이 좋아하는 수영만 해도 한국은 "박태환"만 있을 뿐인데, 미국에는 이미 차기 "마이클 펠프스"들이 너무나 많이 줄지어 있다. 

 

아들에게 미국은 주가 50개나 되니, 한국 같은 나라가 50개가 모여 있으니 더 경쟁력이 강한 거라 얘기하지만, 가끔은 나도 어쩌면 내가 알던 한국은 2014년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싶기도 하고, 내가 알던 한국이 전체 모습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이젠 들기도 한다.

 

여기 있다가 2년 후인 2017년 여름에 한국을 갔다. 당시 친구와 만나기로 했던 난 신세계 백화점 지하 영풍문고를 못 찾아서 같이 갔던 헨리에게 엄청 미안할 정도로 길을 헤맨 적이 있다. 고속터미널 역을 내려 서점으로 가던 길은 수없이 다녔고 내가 분명히 훤히 잘 알던 길이었는데, 그 지하는 완전히 변해 있었고 내가 알던 방향대로 가기엔 너무 복잡해져서 결국 난 서점을 찾지 못해 친구에게 SOS 쳤던 기억이 난다. (한국은 지하철 내에 와이파이가 잘 된다 생각해, 핸드폰 데이터를 처음에 안 신청했다가 정말 힘들었다!!)

 

 

그날 결국 찾아갔던 서점에서 헨리 (June, 2017)

 

저녁에 들른 한강 고수부지에서 아들은 역시 떡볶이를~

 

 

올해 여름엔 한국에 가려했었지만, 다들 그렇겠지만 일찌감치 예약했던 티켓은 당연히 취소했고 다음번으로 미뤘다. 그다음 번이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보통 애가 고등학생이 되고 그러면 여기 애들도 바빠서 한국 가기가 점점 어렵다고들 주변에서는 말한다), 그때에도 헨리가 기억하던 그 동네 떡볶이 집은 남아 있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생긴다. 

 

그리고 내가 알던 한국의 모습이 그대로는 아니더라도 너무 많이는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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