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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icing...

일본인, 북한, 그리고 K-드라마

by 헨리맘 2020. 7. 17.

한 번은 도쿄에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스튜어디스는 한국어와 일본어를 둘 다 할 줄 알았다. 앞 쪽부터 차례로 좌석마다 뭔가를 묻고 있었는데, 다른 분들께는 한국어로 말을 건네던 그녀가 내 앞에 와서는 일본어를 했다. (어렸을 적 늘 일본어 방송을 보시던 아빠를 따라 일본어라도 공부했으면 모르겠지만, 난 일본어를 전혀 모른다...) 그때 어찌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미국에 와서 사람에게서 내가 가장 빈번히 듣던 세 가지를 얘기해 보려한다.

 

첫번째가  바로 "너 일본인이니?"이다. 

 

휴스턴과는 달리 거의 백인 위주였던 오클라호마에 살 때, 미국인들은 아시안 인종을 구별하지 못했다. 아시안이 일단 절대적으로 적고, 그들은 얘기하다 보면 꼭 출신을 궁금해했는데 난 매번 일본인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신랑은 말하길, 자긴 항상 중국인이냐고 묻는다 했다.

 

아시안을 보면 그들은 아마도 중국인, 혹은 일본인 중에 생각나는 걸 아무거나 던진 게 아닐까 싶지만 왜 늘 일본인었는지 모르겠다. 아울러, 왜 그렇게도 출신이 궁금했던 건지 나도 참 궁금했다. 

 

점차 왜 그런지는 이해하게 되었다. 미국인들도 서로 소개를 할 때 보니, 꼭 본인이 어디 출신인지를 밝히는 편이었다. 휴스턴에서 만난 친구들을 보면 원래부터 휴스턴 출신이었는지, 혹은 다른 도시에서 왔는지를 꼭 먼저 얘기했다. (오클라호마 쪽은 대개 태어나 평생을 그곳에서 산 미국인들이 많아 몰랐는데,) 미국은 직장에 따라 거취가 바뀌니 출신지에 대해 서로 알고자 하는 경향이 있는 걸 알게 되었다. 

 

한국도 서로 소개를 하다보면, 어디 살았는지 몇 살인지 어느 학교 나왔는지 등을 따지는 걸 보면 비슷한 듯 하지만, 여기에서는 어디 살았는지까지 딱 거기까지만 궁금해한다. 

 

다음은 나를 괴롭혔던 질문인데, 바로 "북한"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난 북한 전문가도 역사학자도 아닌데,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어김없이 북한에 대해 물어보는 이들이 꼭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좀 연령이 있으신 분들이었다. 왜 분단이 된 건지, 김정은이 정말 북한을 독재하고 있는지 등을 내게 물었다. 영어가 문제가 되는 건 둘째치고 설명을 해주려니, 한국전쟁 연도, 관련된 역사 등 헷갈리고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한국에서 왔다면서 이런 이슈를 설명하며 버벅대고 싶지 않아, 결국 한국 전쟁, 북한과 대한민국의 차이, 김정은 등에 대해 공부를 했다. 여러번 얘기하다 보니, 나중엔 속으로 "올 것이 또 왔군." 하며 점점 외우다시피 잘 설명했다.

 

그러던 어느 날, 테니스 코치 할머니가 있었는데 이 분이 NPR(National Public Radio: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에서 들었다며 나만 보면 탈북민 이슈를 꺼냈다. 심지어 어떤 날은 탈북자가 쓴 책을 읽고 있다며 나에게 추천까지 하시는 거다. 한 번도 아닌 여러 번 탈북민 얘기만 하기엔 난 그들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사실 마음이 아파 깊게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다. 지나간 한국전쟁이나 김정은이 싸이코 독재자라는 건 감정을 배제하고 얘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탈북민에 대해선 현재 진행 중인 같은 민족이 겪는 아픈 역사의 산물이기에 내겐 쉽지 않은 이슈였다. 죄송하지만, 점차 난 그분을 피해버렸다.

 

세번째는 제일 기분 소재이자 최근에 더 많이 듣게 된 얘기이다.

 

레스토랑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데, 서버가 반갑게 다가 오더니 "너 한국인이지?" 물었다. K-드라마 엄청난 팬이라며, 나더러 거기 나오는 사람들과 비슷해서 딱 알아봤다며, 내 체형과 옷차림도 비슷한데 드라마 속 어떤 배우와도 내가 똑같게 생겼다며 친절하게 굴었다. 그 서버는 20대쯤으로 보였는데, 그때가 처음으로 미국인이 나를 한국인으로 바로 알아봐줬던 경험이다. 그것도 오클라호마에서 말이다. 그때 별 것도 아닌데, 어찌나 기분이 좋았었는지 모른다. 

 

휴스턴에 오니, 한국인이냐며 나를 알아보고 말을 건네는 경험이 늘어났다.

 

전에는 아들 수영 경기 때 신랑이랑 기다리며 얘기를 하고 있는데, 뒤 좌석에 앉은 분이 또 말을 건넸다. 너네 한국인이지 하며 자기는 K-드라마 팬이라 했다. 내게 핸드폰을 보여주는데 앱 이름은 기억 안나지만, 내가 알지도 못하는 각종 한국 드라마를 다 보고 있었다. 왠지 좋은 드라마 추천을 해줘야 할 듯해서, 이거 봤니 저거 봐라 하며 드라마를 함께 찾아보며 그분과 나는 그렇게 한참을 얘기했다. 놀랐던 건 유명한 드라마는 이미 다 섭렵했고, 나보다 오히려 최신 드라마를 더 잘 꾀고 있었다. 게다가 K-드라마를 많이 봐서 한국어는 모르지만 그 억양에 익숙해 우리가 얘기하는 걸 듣고 알았다고 했다.

 

넷플릭스에 나오는 한국 드라마를 가끔씩 보고 사는 나로서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 뒤로도, 우리집에 오는 페스트 컨트롤(Pest Control: 해충 방제 서비스) 해주시는 분도 우리 집에 오자마자 우리가 한국인인 걸 알았는데, 부인이랑 온 친척 여자들 모두 K-드라마를 좋아해, 맨날 한국에 놀러 가고 싶어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행 비행기 편이 너무 비싸서 사실은 못 가게 한다고...)

 

친구 중에도 내가 아들과 한국어로 얘기하는 걸 듣고, 자기가 배웠던 프랑스어 억양과 비슷하게 들리는데, 한국어가 듣기에 편안해서 언어는 몰라도 억양이 좋다고 한 적이 있긴 하다. 

 

올 여름, 한국으로 온 가족이 여행을 갈 거라던 두 가족이 있어, 작년에 난 고심해 갈만한 곳을 뽑아 추천해줬다. 그들 친척들 모두 K-드라마 팬이라서 한국을 여행지로 택했던 건데, 안타깝지만 올해 못 갔을 것이다. 

 

K-드라마에 대화는 언제 들어도 불쾌하거나 난감해할 필요 없이 또 한편으로는 뿌듯한 소재였다.

 

끝으로 말도 안되는 얘기 하나로 마무리하겠다. 오클라호마에서 알았던 나보다 열살 쯤 어린 친구가 있는데, 어느 날 "태양의 후예" 드라마를 봤다며 연락이 왔다. 그 주인공 여배우가 나랑 똑같이 생겨서 내 생각이 났다는 문자였다. 사람들에게 얘기했다간 돌 맞고, 세상 예쁜 송혜교는 자다가도 콧웃음을 칠 일이겠지만, 그날 하루 종일 난 기분이 좋았다. ^^

 

 

애정하는 배우 이종석의 "사의찬미" (이종석 드라마는 또 안 나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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