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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 기저귀 모르던 시절 HUT 조사의 추억

by 헨리맘 2020. 11. 12.

마케팅 리서치 중 하나의 기법인 HUT(Home Usage Test)는 집에서 소비자가 실제로 제품을 사용하는 상황 하 특정 제품 사용성을 테스트한다. 예전에 매해 담당했던 HUT 조사가 유일하게 IT제품이 아닌 조사였다. 바로 P&G 기저귀 조사,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기저귀가 뭔지도 모르던 시절에 맡았던 일이었다. 

 

최근 P&G가 팬데믹의 여파로 휴지, 페브리즈, 세제 등 가정용품 매출에 힘입어 15년 만에 최대 이득을 냈다는 기사를 봤다. 미국에서는 홈스테이 명령이 떨어졌을 당시 마트에 가면 정말 휴지를 살 수가 없었다. 아울러 청소용품, 세제 코너 곳곳이 비워져 있었다. 싹쓸이하듯 구매했던 이런 소비자 덕에 위생용품 파는 P&G는 큰 덕을 본 듯하다. 또한 여전히 모두 손을 잘 씻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하에 살고 있으니 앞으로도 장사가 잘 될 듯하다.

 

 

 

올해 3월 HEB 마트 빈 코너 (휴지, 청소용품 코너 등도 유사 모습~)

 

 

 

P&G 관련한 기사나 광고를 접할 때면 문득 오래전 그때가 생각나곤 한다. 다른 마케팅 조사에 비해 HUT는 사전에 신경 쓸 일이 많았는데, 먼저 대상 소비자가 100명이라 치면 그들이 몇 주간 쓸 기저귀를 대량 구매해 미리 전달하는 준비가 필요했다. 마케팅 조사 회사에는 실사팀(Fieldwork)이라 해 조사 대상자 모집과 아울러 조사 진행을 전담하는 팀이 있다.

 

기저귀도 공짜로 주고 조사에 응하면 사례비도 두둑하지만 늘 이 조사 대상자는 모집이 어려워 애먹었다. 아기 엄마들에게 기저귀는 필수품이지만 다들 선호하는 브랜드가 강했고 당시 하기스에 비해 경쟁력이 낮았던 P&G 기저귀 사용자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헨리가 기저귀 차던 시절에 내가 주로 이용했던 브랜드도 P&G 게 아니었다.)  

 

몇 주간 기저귀를 쓴 소비자(=아기 엄마들)를 불러 모은 뒤 난 직접 좌담회(Focus Group Discussion)를 진행했다. 대개 전문 모더레이터가 정성 조사를 진행하지만 P&G 측은 담당자인 내가 직접 하길 원했다. 별로 해본 적도 없는 모더레이팅을 하며 기저귀가 늘어지지는 않는지, 아기에게 편한 기저귀인지, 선호하는 테스트 제품이 무엇인지, 등등 난 소비자들의 반응을 파악했고 P&G 담당자들과 제품에 대해 토론했다.

 

사회과학에서 연구자가 정성 조사에 직접 관여해야 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갑론을박이 있는 이슈이다. 연구자는 과제에서 떨어져 객관적 시각을 지니면서 리서치에 임해야 한다는 입장과 주관을 갖고 리서치에 직접 관여/참여해 경험한 바를 바탕으로 결론을 내야 한다는 입장이 둘 다 있으니 말이다.  

 

마케팅 조사 역시 다양한 제품을 다루기 때문에 리서치 담당자가 모든 제품을 써보고 알기는 힘들 수 있다. 다만 특정 제품에 대한 지식이 전무할 지라도 유의미한 결과 분석을 위해서는 낯선 제품도 이해하려는 센스/자세는 좀 필요하다. 사전에 써보고 정보를 찾으면 쉽게 이해가 갔던 IT제품과 달리 기저귀란 특성상 아기 엄마가 아닌 경우 전혀 알 수 없는 제품이었다. 당시 결혼한 지 얼마 안 돼서 아기에 대해 일도 몰랐던 그 시절에 모더레이터 역할을 잘했던 건지는 약간 의구심이 들긴 한다. 

 

난 한 프로젝트만 맡았지만 P&G는 매해 상당한 규모의 마케팅 조사를 하는 기업이었다. 익히 마케팅 강자로 유명해 늘 마케팅 교과서에도 P&G는 성공사례로 나왔다. 우스개 소리로 예전에 모대기업 마케팅 담당자들은 맥켄지, 피앤지 출신과 나머지/떨거지가 있다는 말이 있었다. 즉 P&G 출신이면 마케팅 전문가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내가 함께 일했던 P&G 담당은 일본인들이었다. 매해 기저귀 조사 때 만나 같이 일을 하며 느낀 건 현장에서 조사 이후 여러 부서 담당자들이 다 모여 바로 그 결과가 실제 제품 개선에 반영될 수 있게끔 신속한 의사결정을 했던 것 같다. 긴 보고 작업보다는 현장에서 얻은 소비자의 목소리에 귀를 더 기울이던 게 인상적이었다. marketingweek.com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P&G는 다른 기업들과는 달리 마케팅 비용을 늘리며 이 시기를 기회로 삼아 미디어에 더 과감히 투자했다고 한다.

 

여전히 영리하게 마케팅을 잘하며 다양한 가정용품 제품군을 꽉 잡고 있는 P&G는 그래도 내겐 추억의 기저귀 회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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